오바마 ‘이집트 딜레마’… 군부 지원 중단하면 무슬림 시위확대로 내전 우려
입력 2013-08-16 18:52
15일 오전(현지시간) 휴가지인 미국 매사추세츠주 마서스 비니어드에서 이집트 유혈사태에 대한 특별성명을 발표하는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표정은 굳어 있었다.
성명 내용은 오바마 행정부의 대(對)이집트 외교정책의 딜레마를 여실히 보여줬다. 오바마 대통령은 “이집트 과도정부와 보안군의 민간인을 상대로 한 폭력을 강력하게 규탄한다”고 했다. 하지만 실질적으로 취한 조치는 다음 달 예정된 미국·이집트 간 정례 군사훈련 취소에 불과했다.
한해 15억5000만 달러에 달하는 이집트 원조 중단 여부와 관련해서 구체적인 언급도 없었고, 무함마드 무르시 전 대통령 축출사태를 ‘쿠데타’로 지칭하지도 않았다.
워싱턴포스트(WP)는 이집트 사태로 인해 민주적인 가치를 외교정책의 기조로 삼겠다고 공언해 온 오바마 대통령이 곤경에 빠졌다고 지적했다. 오마마 외교정책 기조의 실용주의와 이상주의 간 간극이 극대화되고 있다고도 했다.
미국이 비무장 민간인을 600명 이상이나 죽인 이집트 군부에 대해 군사원조 중단 등 강력한 조치를 못하고 머뭇거리는 데는 이 경우 이슬람형제단 등의 시위가 과격해져 이집트 정정이 더욱 불안해질 수 있다는 우려가 작용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이집트 현지 미국 정보 당국자와 이스라엘 정부가 이집트가 자칫 유혈내전에 휩싸인 시리아처럼 될 수 있다는 우려를 백악관에 전달했다고 보도했다.
군부와 관계를 끊을 경우 그러잖아도 감소되고 있는 미국의 이집트에 대한 영향력이 급속히 추락할 것이라는 우려도 있다. 한 아랍국가의 관리는 “미국이 대이집트 군사원조를 중단할 경우 러시아의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2∼3개월 안에 카이로에 나타날 것”이라며 “그는 아무 조건도 달지 않은 원조를 이집트 군부에 제공할 것”이라고 말했다.
여기다 근본주의 이슬람세력의 팽창을 우려하는 사우디아라비아 등 중동의 왕정국가들이 이집트에 80억 달러 지원을 약속하고 있어 미국의 군사원조 중단이 이집트 군부의 행동에 변화를 가져오지 못할 것이라는 판단도 작용했다.
하지만 이러한 점들을 고려하더라도 오바마 외교안보팀이 이집트 군부의 무르시 전 대통령 축출 때부터 상황 판단과 대응에 실패했다는 비판이 강해지고 있다. 정치 컨설팅업체인 유라시아 그룹의 이안 브레머 대표는 16일자 파이낸셜타임스(FT) 기고문에서 미국과 이집트 군부의 관계는 오래됐다면서 미국이 지난달 군부가 무르시를 내쫓은 것을 묵인했던 배경이라고 지적했다. 이는 미국의 중대한 외교 실수였다고 주장했다.
워싱턴=배병우 특파원 bwba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