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 3년 앞… 힐러리 열풍] 검증된 그녀 첫 女대통령 꿈이 보인다
입력 2013-08-17 04:01
워싱턴포스트, 뉴욕타임스, CNN 등 미국 주요 언론은 14일(현지시간)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부 장관이 2016년 미국 대통령 선거 출마 시동을 걸기 시작했다’라는 기사를 쏟아냈다. CNN은 3가지 이유를 들었다. 첫째, 그녀가 2월 장관 퇴임 후 6개월 만에 처음으로 정치 연설을 시작했다. 둘째, 그녀는 내년 출간을 목표로 회고록을 쓰고 있다. 셋째, 버지니아 주지사 후보이자 지난 2008년 그녀의 대선 경선캠프 본부장이었던 테리 매컬리프의 선거자금 마련을 위한 후원행사에 다음 달 나설 전망이다.
특히 12일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전미변호사협회(ABA)에서 정치 연설을 한 것을 대선 출마를 시사한 결정적인 신호탄으로 풀이했다. 하지만 클린턴 전 장관은 6월 연방대법원이 투표권 조항 일부에 대해 위헌 판결을 내린 것을 비판한 것 외에 별 말을 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언론은 장관 퇴임 후 첫 정치적 언급이라며 호들갑을 떨었다.
미국은 지금 재선에 성공한 버락 오바마 현직 대통령이 아닌 이 66세 여성에게 온통 관심이 쏠려 있다. 오바마 대통령의 2기 행정부가 출범한 지 고작 8개월이 지났을 뿐인데 말이다. 2016년 차기 대통령 선거까지는 3년 남았다. 대통령이 막 선출된 시점에 차기 대선주자에 대한 과도한 관심은 우리나라에선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미국에서조차 좀 이른 감이 있다고 본다.
◇힐러리 조기열풍 왜=국내 정치 전문가들은 우선 정치풍토의 차이에서 이유를 찾았다. 우리는 대선이 끝나면 새 대통령을 중심으로 정국 운영이 시작되지만, 미국은 대선이 끝나는 동시에 차기 대선 운동이 시작된다. 경희사이버대 안병진 영미학과 교수는 “미국에서는 ‘영구적 캠페인(Permanent Campaign)’이라고 부르는데 정치가 곧 선거운동일 정도다. 과장해 말해 미국은 대선 끝나고 집권 다음 날부터 차기 대선을 준비한다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5년 단임제인 우리와 달리 대통령 임기가 4년 중임제인 점도 한몫한다. 오바마 대통령은 재선에 성공했고 자연스레 차기 대선주자에 대한 관심이 뜨거워질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실제 클린턴 전 장관이 퇴임하기도 전인 지난 1월 그녀의 대선 출마를 지지하는 ‘슈퍼팩’(Super PAC·액수에 제한 없이 합법적 기부가 가능한 정치외곽단체)이 발족했다. ‘힐러리를 위한 준비(Ready for Hillary)’라는 이름이 붙었고, 최근 세 달 동안 1만 달러(11억원가량)가 모금됐다. 미국의 주요 방송사인 NBC는 클린턴의 삶을 드라마로, CNN은 다큐멘터리로 제작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영웅에 지친 미국, 검증된 리더 갈망=이 같은 열풍은 정치풍토만으로는 납득이 어렵다. 안 교수도 “통상 차기 대선 2년 전부터 달궈지는데 클린턴 전 장관 ‘띄우기’는 전례에 비춰 좀 이른 편”이라고 했다. 차기 대선주자를 갈망하는 현상은 뒤집어 말해 현직 대통령에 대한 실망이 자리 잡고 있다. 이달 갤럽이 집계한 오바마 대통령의 지지율은 41%로 지난 2011년 말 이후 최저치다.
고려대 이신화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오바마 대통령의 지지율 하락은 클린턴 전 장관에게 반사이익인데 특히 오바마 대통령과 정 반대인 클린턴 전 장관의 정치이력이 효과를 배가시킨다”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미국은 2008년 정치 신인이었던 오바마 대통령에게 모험을 걸었고, 2012년에도 지지를 보냈지만 점점 세상 살기는 힘들고 경제도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며 “차기 대선주자에게 희망을 걸지만 이번엔 검증된 리더를 찾는 것”이라고 말했다. 혜성처럼 등장한 ‘영웅’을 통해 새로운 정치 실험을 해봤지만 기대를 벗어나자 ‘구관이 명관’이란 인식이 생겼고, 그런 면에서 오랜 정치경험을 가진 클린턴 전 장관이 제격의 차기 리더란 것이다.
클린턴 전 장관의 매력 자체도 상당하다. 첫 여성 대통령이 탄생할 수 있다는 점은 미국인들을 흥분시키고 있고, 지난 4년간 국무부 장관으로서의 업적도 호평을 받고 있다. 남편인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의 외도를 감싸 안은 그에 대한 인간적인 연민도 깔려 있다.
◇그녀는 대선에 나올까=클린턴 전 장관에게 이런 열풍은 달갑지 않다. 민주당으로선 클린턴 전 장관을 앞세워 크고 작은 선거에서 활용하기 딱 좋지만 정작 그는 이 열풍을 3년 내내 유지시키기 부담되기 때문이다. 안 교수는 “클린턴 전 장관은 현재 워낙 천하무적의 상대라 반대편인 공화당에 위기감을 줘 그쪽의 혁신을 가속화할 수 있다”며 “공화당은 클린턴 전 장관을 누를 카드를 준비하는 동시에 그의 아킬레스건인 ‘낡은 이미지’를 부각시킬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클린턴 전 장관이 대선에 나서 당선된다면 그의 나이는 70세로 역대 최고령 대통령이 된다. 미 존스홉킨스대 국제관계대학원(SAIS)의 데니스 핼핀 방문연구원은 “공화당에 공격할 빌미를 주지 않기 위해 클린턴 전 장관은 최대한 공식 출마 선언을 늦추려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백민정 기자, 워싱턴=배병우 특파원 min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