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강주화] 스마트폰을 던지다

입력 2013-08-16 17:00


전화기가 12대뿐이던 조선 말 1897년. 고종이 궁궐에서 전화로 대신을 찾는다. 신하는 관복·관모·관대를 다 한 뒤 전화기 앞에 나아갔다. 큰절을 네 차례 한 뒤 무릎을 꿇고 바닥에 엎드렸다. 허리를 구부리고 머리를 조아린 자세로 수화기에 귀와 입을 댔다. 전화기를 처음 들여와 왕궁, 육조 관아 등에 설치했던 때의 전화 예절이었다고 한다.

현재는? 올해 기준 국내 휴대전화 가입자 5400여만명. 보급률 100%를 넘어선 지 오래다. 그 가운데 스마트폰 사용자는 3300만명이 넘는다. 대다수가 전화기로 인터넷도 하고 게임도 하고 모바일 메신저 대화도 할 수 있다는 얘기다. 그렇다 보니 요즘은 언제 어디서나 수시로 전화기를 꺼낸다. 누가 앞에 있더라도 전화기를 손에서 놓지 않고 수시로 쳐다본다. 스마트폰 에티켓이란 말조차 무색하다.

어떨 땐 전화기가 우리 대화를, 관계를 가로막는 것처럼 보인다. 지난 주말 주변에 스마트폰의 폐해를 물었다. 20대 후반 회사원은 대번에 ‘지구 멸망 2초 전’이라는 제목의 사진을 보내줬다. 인터넷에 떠도는 것이라고 했다. 운석이 지구로 돌진해 오는데 사람들은 모두 스마트폰을 꺼내 촬영하느라 아우성이다. 상대성 이론을 제시한 과학자 앨버트 아인슈타인의 말이 합성돼 있었다.

“과학기술이 인간 사이의 소통을 뛰어넘을 그날이 두렵다(I fear the day that technology will surpass our human interaction).” 출처를 확인하기 위해 구글링을 했다. 인용 조사 전문 사이트 QI(www.quoteinvestigator.com)는 올해 3월 이 말의 근거가 없다고 말했다. 다만 미 영화 ‘파우더’(1995) 속 등장인물이 아인슈타인을 인용한 비슷한 대사가 영향을 끼쳤을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누가 처음 한 말인지 확인되진 않지만 이 말이 담긴 포스팅은 세계적인 공감을 얻고 있는 듯하다. 인터넷에는 여자 친구들끼리 커피를 마시면서, 해변에서 바람을 맞으면서, 남녀가 데이트를 하면서, 멋진 경치를 보면서, 동료들이 저녁 식사를 하면서…, 모두 각자의 스마트폰을 들여다본다, 아인슈타인이 두려워한 그때가 도래했다는 설명과 함께. 그 글들에는 수십개의 공감 댓글이 달려 있다.

점심 무렵 서울 여의도 한 식당. 일행으로 보이는 직장인 예닐곱명이 음식 주문 후 모두 고개를 숙이고 전화기를 내려다본다. 두 아이를 키우는 30대 후반의 주부는 “아기 엄마들 네다섯이 모이잖아. 그럼 대부분 한 손으로 아기를 안고, 한 손으로는 스마트폰으로 채팅을 해. 얘기를 나눌 새가 없다”고 말한다. 이 정도면 전화기가 상호작용을 방해하고 인간관계를 단절시키는 수준이다. 강준만 전북대 교수는 휴대전화가 현대인의 주인이자 신흥종교라고 표현했다.

국제전기통신연합(ITU)은 내년 전 세계 휴대전화 가입자 수가 70억명에 달할 것이라고 전망한다. 전 세계 휴대전화 보급률이 96%가 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현재 12억명 수준인 스마트폰 사용자 수도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실제 운석이나 행성 충돌로 지구가 멸망한다면 스마트폰으로 인증샷을 찍다 우리 모두 사라질지도 모른다. 그런 면에서 스마트폰은 ‘악마의 전화기’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누군가 전화기를 들여다보는 건 지금 여기에 관심이 없다는 신호에 불과할 수도 있다. 직장 동료들이 식당에서 스마트폰에 코를 박는다. 상사의 지루한 훈계를 피하고 싶어서다. 부모가 말하는데 아이가 전화기만 쳐다보고 있다. 십중팔구 ‘공부하라’는 둥의 잔소리를 듣지 않으려는 방어자세다. 남편이 퇴근해도 아내가 본척 만척이다. 나눌 대화가 없어서다.

어쩌면 아내는 동네 아줌마들과 ‘폭풍’ 카카오톡을 할지도 모른다. 자녀는 친구와 문자를 주고받는 게 더 즐겁다. 남자친구와의 대화보다 카톡이 더 중요하다. 부하 직원은 스마트폰에서 야구선수 류현진의 성적을 실시간에 확인할 수 있다. 스마트폰의 정보, 게임, 네트워킹이 더 큰 즐거움을 주는 거다. 결국 전화기는 사람과 사람을, 사람과 정보를, 사람과 오락을 연결해주는 매개체이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지금 여기(here and now)’에 집중하는 에너지다. 상사라면 부하 직원의 관심사를 들어본다. 남편은 아내가 제일 좋아하는 드라마를 같이 보고 인물 품평에 동참한다. 자녀의 가장 친한 친구에 대해 물어보는 시간이 필요하다.

독일 심리학자 프린츠 펄스는 “과거는 지나가 버린 것이며 미래는 아직 오지 않았다. 오직 현재만이 존재한다”고 말했다. 심리치료 기법으로서 현재를 강조했지만 일상 속 관계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 같다. 지금 여기에 있는 너와 나에게 관심 갖고 눈을 맞추자. 스마트폰은 내려두고.

강주화 종교기획부 기자 rul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