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언스 토크] 캠핑과 생체시계
입력 2013-08-16 17:00
‘걸어다니는 시계’로 불릴 만큼 시간관념이 철저했던 칸트는 대표적인 아침형 인간이었다. 그는 매일 아침 5시에 일어나 저녁 9시엔 반드시 잠자리에 들었다. 아침형 인간에는 칸트처럼 논리적인 일을 잘할 수 있는 직업군의 사람이 많다.
같은 철학자라도 데카르트는 군인으로 복무할 때조차 오전 11시까지 잤다고 전해지는 전형적인 올빼미족이었다. 늦잠을 자도 좋다는 허락을 받고서야 학교에 다닐 정도였다.
하지만 데카르트를 곤혹스럽게 하는 일이 벌어졌다. 스웨덴의 크리스티나 여왕이 그를 철학 과외교사로 초빙했는데, 새벽 5시에 강의를 해달라고 요청했던 것. 그로부터 몇 개월 후 데카르트는 그곳에서 급작스럽게 사망했다. 공식 사인은 폐렴이었지만, 새벽 강의가 저녁형 인간인 그의 면역체계를 약화시켰다는 설이 유력하다.
한때 아침형 인간 열풍이 불면서 저녁형 인간은 게으름의 상징이 된 적이 있다. 하지만 이에 대한 반론도 만만찮다. 외국의 한 시인은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자가 가장 먼저 신께 다가갈 수 있다면 수탉이 가장 먼저 신을 발견했을 것”이라고 비꼰다. 또 아침마다 생체리듬을 엉망으로 만들어버리는 자명종을 ‘인류 최악의 발명품’이라고 일컫기까지 한다.
아침형 인간과 저녁형 인간을 결정짓는 생체시계의 비밀은 아직 풀지 못한 과학적 난제로 남아 있다. 일부 과학자들은 그 열쇠가 빛의 영향을 많이 받는 뇌 속의 ‘시교차상 핵’에 있다고 본다. 또 어떤 과학자들은 생체시계를 관장하는 유전자가 있어 개인마다 다른 수면 패턴이 정해진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하기도 했다.
그런데 최근 데카르트 같은 저녁형 인간의 생체시계 바늘도 간단하게 아침형으로 돌려놓을 수 있다는 실험 결과가 발표됐다. 미국 콜로라도대 연구진이 밝힌 그 실험 비결은 간단했다. 인공적인 불빛이 전혀 없는 로키산맥의 깊은 곳에서 1주일 동안 오직 태양빛과 모닥불에만 의지한 채 캠핑을 하는 방법이 바로 그것.
연구진은 “인공적인 불빛에 둘러싸인 현대 사회를 벗어나 자연광에만 노출되면 자연적인 낮밤 주기에 맞춰 생체시계가 바뀐다”고 설명했다.
현대인에게 1주일간의 캠핑은 꿈같은 일이다. 잦은 야근과 교대근무, 심야 업무를 하는 일부 직장인의 경우 1주일의 캠핑을 다녀온 후가 더욱 문제일 것이다. 어쩌면 생체시계의 혼란은 현대인들이 이 세상을 살아가는 또 하나의 생존법일지도 모르겠다.
이성규 (과학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