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을 열며-손영옥] 50대를 팔아도 되지 않을까
입력 2013-08-16 17:00
특정 연령대를 공략하는 ‘나이 마케팅’은 출판계에서도 꽤나 효과가 검증된 전략이다. 예컨대 막 사회에 진입한 30대를 겨냥한 책들은 2000년대 후반을 풍미했다. ‘서른살 경제학’ ‘서른살이 심리학에게 묻다’ ‘서른살 직장인 책읽기를 배우다’ 등. 요약하자면 성공을 위한 자기 계발서다.
최근 수년 사이엔 마흔이 부상했다. 특히 지난해에는 ‘마흔’이 한 해 출판계를 관통한 키워드로 꼽힐 정도로 마흔을 간판으로 내건 책들이 중년 독자들을 흔들었다. ‘마흔에 읽는 손자병법’ ‘마흔살의 정리법’ ‘마흔의 서재’ ‘아플 수도 없는 마흔이다’ 등이 인기를 끈 책들이다. 특히 불황과 맞물려 힐링 에세이 열풍이 부는 가운데 40대를 위한 책들도 무한경쟁에 지친 중장년층을 위로하는 모양새를 취했다.
이처럼 출판가의 나이 마케팅의 타깃 연령층이 30대, 40대로 올라가면서 슬슬 50대를 위한 책이 나올 시점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 더욱이 지난 대선에서 보수당이 예상을 깨고 재집권에 성공한 건 50대의 보수화 때문으로 분석되지 않았던가. 우리 사회는 이제 50대를 주목하는 것이다.
지난 6월쯤인가. 출판계 미다스의 손으로 통하는 한 여성 출판사 사장을 만났을 때, 그 얘기를 했다. 그녀의 대답은 한 마디로 장사가 안 된다는 것이었다.
“우리 사회에서는요, 50대는 제 나이를 밝히는 거 싫어해요. 그러니 50대를 제목으로 달면 장사가 될 리 있겠어요? 50대는 젊게 보이기 위해 오히려 40대를 위한 책들을 묻어서 가듯 사지요.”
아마도 우리 사회에서 명예퇴직에 내몰리는 시기가 50대이니 나이를 숨기고 싶은 심리가 있을 것 같기도 했다. 그러고 보니 연초 50대를 제목에 박은 책들이 간헐적으로 나왔으나 어느 것도 성공한 게 없었다.
그런데, 한 달여 전 출간된 심재명(50) 영화제작사 명필름 대표의 에세이 ‘엄마 에필로그’(마음산책 펴냄)를 읽으면서 생각이 좀 달라졌다. 심재명. 영화계 미다스의 손으로 불리는 제작자다. ‘접속’ ‘공동경비구역 JSA’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 ‘건축학개론’ 등 무수한 히트작을 냈다. 그런 심 대표가 쓴 에세이라고 했을 때 솔직히 테일러드 재킷을 입고 팔짱을 낀 채 턱은 한껏 치켜든, 성공한 여성의 전형적인 포즈를 취한 표지 사진의 자기 계발서를 상상했다.
하지만 책은 예상을 깼다. ‘나의 오십 엄마의 오십’이라는 책 속 소제목이 주제를 요약한다. 어느 새 갱년기가 된 딸이 세상을 떠난 엄마를 회상하는 내용이다. 문득 엄마의 오십에는 자신이 반항의 사춘기였음을 깨닫는다. 당시 엄마는 여자로서는 생의 가장 큰 고비인 갱년기를 넘어가고 있었지만 자기중심적인 사춘기 딸은 전혀 몰랐고, 그걸 스스로 갱년기가 되어서야 비로소 깨닫는다.
책은 이렇듯 엄마를 향한 절절한 사모곡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앞만 바라보며 달려오던 생에 브레이크를 걸고 주변을 돌아보는 반성과 성찰의 기록이다. 갱년기 탓에 주체할 수 없이 흐르는 땀에 절어, 어느새 티셔츠에선 옥수수 쉰내 같은 시큼한 냄새가 풍긴다는 사실을 숨기지 않는다. 그런 민낯의 정직성과 자기 성찰이 심금을 울렸다.
인생 100세 시대다. 오십은 그 반환점을 도는 시기다. 반환점을 돌아오다 보면 온 길을 재음미해보기도 하고 지나오면서 보지 못했던 것들을 보기도 한다. 반성과 새로운 성찰의 과정이다. 그것들은 인생 2막의 전제조건이기도 하다. 심 대표의 에세이가 좋은 예다. 출판계의 나이 마케팅에서 이제는 50대가 자신의 민얼굴을 드러내기를 기대해본다.
손영옥 편집국 선임기자 yosoh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