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 재활용의 미학] 재개발 현장은 사회의 민낯… ‘버려진 공간’서 영감을 찾다

입력 2013-08-17 04:03 수정 2013-08-17 12:28

인천아트플렛폼 ‘옥인 콜렉티브’의 비움과 채움

인천아트플랫폼 E동 22호엔 낯설고도 익숙한 이름의 예술그룹이 입주해 있다. ‘옥인 콜렉티브’. 지금은 사라진 서울 옥인동 옥인아파트에서 이름을 딴 시각예술가 그룹이다. 김화용 이정민 진시우 작가로 구성된 옥인 콜렉티브는 2009년 옥인아파트 철거현장에서 ‘버려진 공간’에서 의미를 찾는 프로젝트를 함께하기로 뜻을 모았고, 요즘 재생된 개항지에 상주하며 작업 중이다. 지난 14일 오후 인천아트플랫폼 작업실에서 이정민 진시우 작가를 만났다. 이 작가는 옥인아파트 철거 당시를 떠올리며 “버려진 공간은 아수라장이었지만 혼란 속에 남겨진 느낌이 작업의 여러 요소에 영감을 줬다”고 말했다. 서울 수성동 계곡 인근에 1971년 지어진 옥인아파트는 2007년 인왕산 공원화 계획이 발표된 지 2년 만인 2009년 8월 철거됐다. 사람들이 떠난 빈집의 인상에서 영감을 얻은 옥인 콜렉티브가 이를 작품으로 표출했다. 이들은 철거현장에 뮤지션을 초청해 공연을 하거나 퍼포먼스를 벌이고 ‘옥인동 바캉스’라는 제목으로 옥상에 텐트를 치기도 했다. 진 작가는 “옥인아파트의 역사를 조사하고 주변 지역을 탐색하는 것 자체가 우리 사회의 민낯을 만나는 재미있는 작업이 됐다”고 말했다.

이들은 ‘버려진 공간’에 역사는 물론 정치와 경제도 복합적으로 맞물려 있다고 말한다. 공간이 곧 사회현상의 집약체란 것이다. 이 작가는 “재개발 문제, 수송동 계곡 주변의 고급 주택화, 표면적으로만 친환경적인 정책, 쫓겨나는 세입자들 같이 흉물로 치부된 건물이 치워지는 과정에서 더 많은 문제가 발생했다”고 말했다.

프로젝트가 끝날 때마다 ‘장소’를 옮긴 뒤 예술가의 촉을 곤두세워 공간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인다. 한 장소에 꽂히면 그 일대를 걸어 다니며 감상을 축적해 적절한 예술행위를 구상하는 식이다. 이 작가는 3년 전 인천아트플랫폼이 문 열 당시 들렀다 받은 인상을 잊지 못하고 돌아왔다. 그는 “일제시대의 잔재와 근대문물이 남아있고 중국인 거리의 흔적도 존재했다”며 “외면당한 구도심의 쇠락한 느낌도 있었다”고 말했다.

오는 11월, 옥인 콜렉티브는 발원지인 옥인동으로 돌아간다. 현시원 큐레이터가 진행하는 인왕산 프로젝트를 위해서다. 공간도 사람도 한곳에서 오래 견디기 힘든 시대에 옥인 콜렉티브는 ‘개발’이란 이름 아래 사라져가는 공간에서 그 상징성과 역사성을 표현하려 한다.

전수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