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 재활용의 미학] ‘文化의 마법’ 창고가 명물로…

입력 2013-08-17 04:09


프랑스 파리 센강변에 해마다 300만명이 찾는 오르세 미술관이 있다. 19세기 인상파 화가들의 작품이 소장된 이 미술관의 원래 주인은 기차였다. 오르세역은 1900년 만국박람회 때 최첨단 시설로 지어졌지만 시간이 흐르고 기술이 진보하면서 점차 낡은 건물로 전락했다. 폐쇄 얘기가 나올 무렵 정부 박물관국이 나섰다. 역 건물을 ‘역사기념물’로 지정한 뒤 미술관으로 꾸며 1986년 문을 열었다. 역사 속으로 사라질 뻔한 기차역이 박물관으로 다시 태어난 것이다.

영국 런던의 현대미술갤러리 ‘테이트 모던’도 비슷한 배경을 갖고 있다. 2000년 세계 최대 갤러리로 개관한 이곳은 원래 버려진 화력발전소였다. 발전소 외관을 유지한 채 전면 개조해 도시의 랜드마크가 됐다. 영국 뉴캐슬 인근 소도시 게이츠헤드는 폐허가 된 공장을 개조해 발틱현대미술관을 만들었고, 이탈리아 베니스의 낡은 세관 건물은 이제 푼타 델라 도가나란 이름의 박물관이다.

이처럼 수명을 다한 공간에 새 생명을 불어넣는 도시 재생 작업이 국내에서도 활기를 띠고 있다. 서올 통의동의 지은 지 80년 된 ‘보안여관’. 오랜 세월 한 자리를 지키며 수많은 나그네의 쉼터가 돼준 여관은 2007년 복합문화예술공간으로 탈바꿈해 지금까지 40여 차례 전시회와 퍼포먼스가 펼쳐졌다. 서울 성수동 일대의 폐공장과 낡은 창고들은 하나둘 스튜디오나 쇼룸으로 변신 중이다. 뮤직비디오나 화보 촬영장으로 인기가 높고 공연도 열린다.

서울 문래동 철공소거리는 2000년대 중반부터 방치된 사무실마다 가난한 예술가들이 모여들었다. 싼 보증금과 월세에 이끌려 이 거리로 온 이들은 ‘문래예술창작촌’을 형성했다. 인천 제물포에 1940년대 세워진 창고, 인쇄소 등은 ‘인천아트플랫폼’으로 변신했고, 서울역은 ‘문화역서울284’라는 새 이름으로 전시, 공연, 콘퍼런스 등 다양한 행사가 열리는 서울의 명물이 됐다.

낡은 건물만 새 주인을 만나는 건 아니다. 서울 도화동과 효창동을 잇는 새창고개와 연남동 폐철로에서는 ‘경의선 숲길공원’ 공사가 한창이다. 지난 4월 1단계 공사를 마친 대흥동 일대 760m 구간은 시민에게 개방됐다.

‘공간 재생’은 급격하게 변하는 주변 환경에 대한 사람들의 본능적 두려움이 생산적으로 표출된 결과라고 한다. 한국예술종합학교 건축과 우동선 교수는 “건축물은 당대 진보의 상징이자 성장의 지표지만 한편으론 우리의 기억을 저장하는 수단”이라며 “역사를 지닌 건물에 새로운 용도를 불어넣어 기억을 훼손하지 않은 채 옛것과 맞닿은 새 문화를 만들어갈 수 있다”고 설명했다.

전수민 기자 suminis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