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우익들 ‘狂氣’로 넘실… ‘소녀의 눈물’ 또 짓밟는다
입력 2013-08-15 17:44
우리의 광복절이자 일본의 패전일인 15일 도쿄 한복판에 위치한 야스쿠니(靖國) 신사 주변은 일본 우익세력이 뿜어내는 ‘광기’(狂氣)로 넘실댔다.
신사 내부에서는 차분한 분위기 속에 참배행렬이 줄을 이었지만 신사 밖에서는 우익단체들이 곳곳에서 일본 군국주의 부활을 주장하는 피켓을 들고 하루 종일 진을 치고 있었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의 우경화 행보로 한국, 중국 등 주변국과의 갈등이 최고조인 상황이어선지 야스쿠니 신사 앞은 어느 해보다도 일본 우익세력이 많이 결집했다. 긴장감도 팽팽했다. 특히 일본의 사죄를 촉구하는 성명을 발표하기 위해 야스쿠니 신사를 찾은 한국의 민주당 의원들을 보고 자극받은 듯 격한 언사를 쏟아냈다.
이들은 한국 방송사 로고를 부착한 카메라가 눈에 띄자 “한국 언론은 돌아가라”, “멋대로 언론을 이곳에 불러 모았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한국인을 죽이자”는 섬뜩한 구호도 튀어나왔다. 한국 정치인을 바퀴벌레에 비유하는 막말도 서슴지 않았다. 민주당 의원들을 보호하기 위해 배치된 일본 경찰을 향해선 “무엇 때문에 여기를 지키느냐”며 몸싸움을 벌이기도 했다. 평소 타인에게 폐를 끼치는 일을 극도로 꺼리는 일본인의 모습과 사뭇 달랐다.
야스쿠니 신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하려던 민주당 이종걸 이상민 문병호 의원과 이용득 최고위원은 경찰의 제지로 신사 건너편 길거리에서 한 발짝도 내딛지 못하고 뒤돌아섰다.
신사 밖이 아수라장이 되는 동안 신사 내부로는 수천명의 참배객이 하루 종일 드나들었다. 아베 내각의 구성원인 신도 요시타카(新藤義孝) 총무상과 후루야 게이지(古屋圭司) 납치문제담당상은 이른 아침 참배를 마쳤다. 신도 총무상은 참배를 마친 뒤 “전적으로 개인적인 결정으로 신사를 찾았다”고 했다. 하지만 후루야 담당상은 “전쟁에서 희생된 이들을 기리는 것은 순전히 일본 국내 문제”라며 “다른 나라에서 왈가왈부할 문제가 아니다”고 말했다.
아베 총리가 앞장서서 일본의 군국주의를 옹호하는 현실을 반영하듯 야스쿠니 신사는 자국 내에서도 어느 해보다 우경화의 상징처럼 인식되는 듯 보였다. 핵무장을 주장하는 것으로 알려진 행복실현당 소속 정치인들도 전국 당원을 이끌고 신사를 찾았다. 또 신사 내 전시시설인 유슈칸(遊就館)에서는 특별전시회 ‘대동아전쟁 70년 전’이 열리고 있었다. 일본이 미드웨이섬의 미군 기지를 공격한 1942부터 43년까지의 전투에서 숨진 이들의 유품이나 서적 등을 공개하는 자리였다. 신사 내부의 주요 통로에선 위안부 문제에 대해 사과의 뜻을 담은 고노(河野)담화의 철폐를 요구하는 서명운동이 벌어지기도 했다.
조부가 전쟁 중 일본에서 사망했다는 고이케 다케시(小池武·52)씨는 “야스쿠니 신사에 A급 전범 등이 합사돼 있어 참배 행위가 전쟁이나 식민지배를 미화하는 행위라는 비판을 알고 있다”면서도 “지금 일본이 평화롭게 사는 것은 전쟁에서 희생된 이들의 덕”이라고 말했다. 이어 “전쟁은 나쁜 것이지만 그건 윗사람이 마음대로 결정한 거고 전쟁에서 죽은 이들은 별개의 문제 아니냐”고 덧붙였다.
백민정 기자, 연합뉴스 min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