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百 최 과장, 저녁 7시 동대문시장에 출근 이유는…

입력 2013-08-16 05:04


“동대문시장에는 수많은 구슬이 있습니다.”

롯데백화점 영캐주얼 여성패션 부문 MD인 최용화(40) 과장은 지난해 5월부터 저녁이면 ‘구슬’을 찾기 위해 동대문시장으로 출근했다. 제일평화시장 등 도매시장이 그의 활동 무대다. 최 과장에게 구슬은 동대문에서 훌륭한 제품을 만들어 파는 패션 매장이다. 구슬이 제 빛을 낼 수 있도록 꿰어 주는 게 그의 역할이다.

이제껏 최 과장이 찾아낸 구슬은 루더스타일, 엘불룸, 밀스튜디오 등이다. 이들은 지난해 8월 롯데백화점 안에 매장을 냈다. 1년이 흐르는 동안 꿰어준 구슬은 진가를 보였다. 루더스타일은 영등포·강남·건대점에 입점한 뒤 영캐주얼 브랜드 매출 1위 자리를 지키고 있다. 인터넷 쇼핑몰로 시작한 나인걸은 오는 23일 롯데백화점 본점에 들어온다. 스트리트 패션이 영캐주얼 매장도 아닌 본점에 들어서는 것은 처음이다. 현대백화점 중동점도 동대문시장은 아니지만 홍대, 가로수길 등 ‘스트리트 패션’ 매장을 입점시켜 인기를 끌고 있다.

15일 백화점 매장을 돌고 있던 최 과장은 “패션 시장이 불황을 겪으면서 의류 업체들이 신규 브랜드를 론칭하지 않았다”면서 “대안을 모색하기 위해 지난해 동대문 도매상가와 인터넷 쇼핑몰 등 스트리트 패션에 관심을 기울였다”고 운을 뗐다.

특히 최 과장은 ‘시장 패션’의 강점을 눈여겨봤다. 동대문시장의 패션은 발 빠르게 유행을 따라갔다. 예쁜 디자인에 비해 가격은 쌌다. 하지만 시장 상점을 백화점으로 끌어들이는 것은 생각만큼 쉽지 않았다. 일단 유명 매장을 찾는 것부터 어려웠다. 시장의 내부 구조는 복잡했고 매장은 이름보다 호수로 통했다.

시장 상인들의 마음을 공략했다. 하루가 멀다 하고 찾아가 끈질기게 매달렸다. 열정에 마음을 연 상인들은 차츰 유명 매장에 대한 정보를 알려줬다. 이때부터 매장 사장과의 줄다리기가 시작됐다.

“유명 매장의 경우 영업이 끝나면 계수기로 돈을 셀 정도로 많이 벌었어요. 그러니 굳이 백화점에 들어올 이유가 없었죠. 백화점에 들어오면 백화점 수준에 맞는 고객 응대를 해야 하고 소방시설 등 지킬 것도 많았거든요.”

최 과장은 설득하기 위해 4개월간 1주일에 두세 번은 동대문시장을 찾았다. 저녁 7시부터 새벽 2시까지 정해놓은 매장을 돌고 또 돌았다. 새로운 패션 트렌드를 만들어보자는 제안과 끈질김은 결국 성과를 봤다. 루더스타일의 오유림 대표는 “하루에도 아침, 저녁마다 전화했고 찾아와선 끈질기게 설득했다”면서 “다른 유통업체 직원과는 달랐다”고 말했다. 오 대표는 “처음엔 제도권에서 유명 패션 회사들과 경쟁하는 건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이라고 생각했다”면서 “사회가 다변화하면서 동대문 패션도 충분히 백화점 안에서 승산이 있을 것이라 판단했고 결과는 나쁘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시장 패션의 성공적 안착에 롯데백화점은 고무됐지만 고민도 있다. 동대문 상품에 대한 편견이 백화점 이미지를 떨어뜨릴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 때문이다. 최근 황범석 여성·패션 부문장은 24명의 선임상품기획자를 불러 이 같은 문제를 두고 질문을 던졌다.

최 과장은 “백화점은 100개의 물건을 파는 곳이다. 고객을 위한 제품의 다양성은 필요하다”면서 “디자인은 동대문 상품과 비슷하게 가는 대신 소재는 고급스러운 것을 선택해 차별화를 둬 문제가 없다”고 자신 있게 말했다. 그는 “돈은 없지만 상품을 잘 만드는 사람들에게 꿈을 이룰 수 있는 기회가 되기를 희망하고 있다”면서 “앞으로도 숨은 고수들을 찾는 것이 제가 해야 할 역할”이라고 강조했다.

서윤경 기자 y27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