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김희성] ‘바람이 분다’

입력 2013-08-15 18:05


개봉일을 기다리고 있는 작품이 있다. 일본 애니메이션의 거장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최신작 ‘바람이 분다’. 최고 시청률의 국민드라마도 챙겨보기 귀찮아하는 게으름뱅이가 일정표에 영화 시간까지 입력해놓고 대기 중이다. 감독이 5년 만에 내놓은 작품이기도 하지만 데뷔 이후 처음으로 실존 인물을 그렸다는 점, 그리고 그 주인공이 노감독의 역사관을 논란의 장으로 끌어들였다는 점이 내 유난스러운 기대의 이유다.

호리코시 지로. 제2차 대전 당시 일본군 주력전투기 제로센을 개발한 수석 연구원. 그의 꿈이었던 아름다운 바람같은 비행기는 강제 징집된 조선인들의 피와 땀으로 만들어졌고 결국 자살특공대 가미카제(神風)의 공격기가 돼 수많은 목숨을 불길과 함께 집어삼켰다.

대체 미야자키 감독은 무슨 말이 하고 싶었던 것일까. 아베 총리의 헌법 개정 시도를 비판하며 당시 일본이 여러 국가에 저지른 전쟁범죄에 대해 일본 정부가 사죄, 배상해야 한다고 주장했던 그가, 왜 하필 지금 호리코시 지로의 꿈을 그리고 싶었을까. 비행기를 만들려면 군용기를 만들 수밖에 없는 시대에 옳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단지 그 시대를 열심히 살았다는 이유만으로 한 개인을 단죄해도 좋은 것인지 의문이라는 감독의 발언은 좀 충격적이었다.

기동전사 건담을 그린 만화가 야스히코 요시카즈는 자신의 작품 ‘왕도의 개’ 저자 후기에 다음과 같이 썼다. “옛날 사람들은 오늘날 우리보다 더욱 현명하게, 한눈파는 일 없이 열심히 살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살던 나라, 일본은 과오를 저질렀다… 언제부터 일그러져 일본을 패권주의 국가로, 온 아시아에 대한 가해자로 만들었을까?” 중요한 역사의 순간, 소수의 광기 앞에서 다수는 때로 무력해지고 그렇게 뒤틀린 운명을 살게 된다. 강력한 소수에 대한 나약한 다수의 동의, 일본은 그렇게 가해자의 역사를 갖게 된 것이다.

“일찍이 일본에 전쟁이 있었다.” 예고편의 한마디가 갈고리처럼 마음에 걸린다. 자국이 일으킨 전쟁에서 패망한 날을 68년간 종전기념일로 챙기고 있는 나라가 일본이다. 과연 전쟁을 모르는 일본의 어린 관객들이 감독의 작품을 보며 무슨 생각을 할까. 그 ‘일찍이 있었던 전쟁’을 일으킨 장본인이 일본이라는 것을, 그래서 호리코시 지로의 아름다운 꿈을 살인병기로 만든 것이 자신들의 조국, 일본이라는 것을 직시하고 인정할 수 있을까? 기다리는 마음으로 지켜볼 생각이다.

김희성(일본어 통역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