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폐의 핵심 원리 ‘이자 시스템’이 빈부격차 키운다
입력 2013-08-15 16:46 수정 2013-08-15 16:50
화폐를 점령하라/마르그리트 케네디/아포리아
2008년 전 세계를 강타한 경제위기는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사태로부터 촉발됐다. 투자은행 리먼브러더스의 파산을 시작으로 금융권 혼란이 커지면서 실물경제 위기로 이어졌다. 결국 미 정부는 금융회사와 투자회사들의 회생을 위해 막대한 세금을 쏟아 부었다. 하지만 이들은 회생자금으로 ‘연말 성과급 파티’를 벌이는 도덕적 해이의 끝장을 보여주며 과거의 탐욕과 부패를 답습했다.
이렇게 부패한 금융산업과 자본을 향한 분노는 ‘월스트리트를 점령하라(Occupy Wall Street)’는 시위로 폭발했다. 미국뿐 아니라 유럽과 한국의 여의도에도 상륙했던 월가 시위는 최상위층 1%와 99%로 양극화된 자본주의의 실체를 누구나 알게 했지만, 현실적인 해답은 찾지 못했다.
이런 현실 앞에서 독일 하노버대 교수이자 지난 30년간 국제보충화폐운동을 펼쳐온 저자 마르그리트 케네디는 묻는다. “세계 경제위기를 초래한 주범으로 자본주의를 비판하면서 왜 자본주의의 대명사인 투자은행과 보험회사, 금융평가 기관이 증권거래소에서 돈의 가치를 쥐락펴락하도록 수수방관하느냐”고. 인간이 만든 금융 시스템이니 우리 손으로 개선할 수도 있지 않느냐고 말이다.
그는 경제학자들이 신봉하는 화폐의 핵심 원리인 이자, 특히 복리 시스템에 정면으로 문제를 제기한다. 얼핏 보면 이자는 저축한 사람에겐 보상해주고 빌린 사람에게는 수수료를 받는 공평한 시스템 같다. 하지만 저자는 이자가 파급하는 효과를 들여다보면 오히려 이자는 부자와 가난한 사람들의 격차를 가속화하는 수단에 불과하다고 지적한다.
우리는 돈을 빌릴 때만 이자를 지불한다고 생각하지만 생수 같은 상품에도, 주택 임대료에도 이자 비용이 포함돼 있다. 이렇게 숨겨진 이자 때문에 결국 이자 비용을 치르는 것보다 금리 수익을 더 얻는 이들은 상위 10%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저자는 장기적으로 화폐 시스템은 복리 이자 문제로 붕괴 위기에 처할 수밖에 없다며 화폐 시스템 개혁에 나설 것을 촉구한다. 다소 과격해보일 수 있는 ‘화폐를 점령하라’는 제목은 부제 ‘99%의 화폐는 왜 그들만 가져가는가’가 말해주듯 소수의 독점이라는 왜곡된 상태로 놓여있는 화폐를 모두의 것으로 되돌리자는 의미다.
저자는 이를 위해 각 나라와 지역에서 시도되고 있는 다양한 대안 모델을 소개한다. ‘무이자은행’으로 유명한 스웨덴의 JAK협동조합은행이 대표적이다. 스웨덴의 농촌 지역에서 협동조합모델로 출발한 이곳은 저축을 하면 이자 대신 포인트를 주고, 포인트가 쌓이면 이자 없이 대출을 받을 수 있다.
선박회사에서 쓰는 ‘디머리지(Demurrage)’ 제도를 도입하자는 주장은 자본 소득에 대한 반기로 읽힌다. 디머리지는 의뢰인이 약속한 기간 내에 물건을 하역하지 못할 경우 초과 정박 기간에 대해 선박회사에 지급하는 수수료다. 이는 화물선의 회전율을 높이는 역할을 하는데 이것을 경제 시스템에 적용시켜서, 돈을 현금이나 당좌 계좌에 묶어두는 경우 소액의 수수료를 물리자는 것이다. 여윳돈으로 공짜 소득을 챙기며 일하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을 더 이상 용납하지 말자는 것이다.
이밖에도 오스트리아 포르알베르크에서 주정부의 지원을 받으며 통용되고 있는 ‘시간 화폐’, 독일 키우가무의 ‘지역 화폐’, 브라질에서 한때 도입됐던 ‘교육 화폐’ 등 쉽게 상상할 수 없는 대안 화폐들을 보여주고 있다. 기존 화폐를 대체 불가능한 원리로 생각하고 있던 이들이라면 “그런 게 과연 될까”하는 생각을 떨쳐내기 쉽지 않을 것이다.
저자는 이에 대해 이렇게 답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은 시스템 개선은 상상조차 하지 못할뿐더러 모두가 헌신적으로 뛰어들어야 겨우 가능하다고 생각하지만 이는 그릇된 생각이다. 최근 사회 연구에 따르면 우리 중 10%가 문제점을 제대로 인식하고 변화를 적극적으로 추구한다면 나머지 90%는 자연스럽게 따르게 되고 세상은 변화한다.”
비경제학자 출신인 저자는 경제 분야에서 가장 설명하기 어렵다는 금융 문제에 대해 경제학 원론을 접해보지 않은 독자들도 이해할 수 있게끔 손쉽게 설명한다. 이 책을 통해 더 나은 금융 제도가 가능한 것인지, 어떤 것들이 있는지 궁금해진 이들에겐 문진수 한국사회적금융연구원장의 근간 ‘금융, 따뜻한 혁명을 꿈꾸다’(북돋움)를 권한다. 황윤희 옮김.
김나래 기자 nara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