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은 살아있는 모든 존재들의 문제… 최성각 생태소설집 ‘쫓기는 새’
입력 2013-08-15 16:42
소설가 최성각(58)의 생태소설집 ‘쫓기는 새’(실천문학사)의 표제는 우리 모두가 생태계의 위기에 쫓기고 있다는 경각심을 불러일으킨다. 여기서 ‘생태’란 타인을 존중하는 일일진대 그 타인 안엔 인간도, 나무도, 개울물도, 곤충도 다 포함된다.
‘풀꽃 세상’이란 환경단체를 세워 새나 돌멩이, 지렁이에게 환경 상을 주는 방식으로 환경운동을 전개하다가 9년 전 강원도 춘천시 서면 툇골에 들어가 살고 있는 최 작가는 14일 전화통화에서 이렇게 말했다.
“제가 20여 년 전 환경운동에 뛰어든 것은 생명의 문제가 나에게 절박하다면 남에게도 절박하다는 것을 알게 됐기 때문입니다. 환경은 좌나 우의 문제가 아니라 살아 있는 모든 존재들의 문제이죠. 환경 파괴의 패턴은 20년 전이나 지금이나 똑 같지요. 개발론자의 주장을 어용학자가 거들고 무책임한 행정이 눈을 감으면서 쳇바퀴 돌 듯 반복되고 있어요. 이제 내게 문명은 도시가 아니라 시골에서 고랑을 만들거나 풀을 뽑아 거름을 만드는 일이지요.”
그에게 절박한 건 환경오염지역이나 원전 앞에 몰려가 피켓 시위를 하던 과거의 거창한 행동이 아니라 하루치의 땔감을 모으는 일이다. “아아, 30만원이면 내 처지에 얼마나 큰돈이란 말인가. 읍내 단골 헌책방에서 두 달은 놀 액수였다. (중략) 그 돈이면 마누라 옷도 몇 벌은 사 입힐 수 있을 것이다. 아니다. 마누라 옷은 무슨 옷? 자주 얻어먹던 사람들에게 호기를 부리며 식사 대접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은행나무는 좋은 땔감이 아니다’ 부분)
읍내로 가려면 꼭 거쳐야 하는 국도 변 방죽 아래에 은행나무 두 그루가 쓰러져 있는 것을 발견한 ‘나’는 땔감이나 하자며 은행나무를 톱으로 잘라 트럭에 싣는다. 하지만 이를 지켜본 동네 사람이 “이거 하천 공사 끝나면 다시 일으켜 세울 나문데 누구 맘대로 자르느냐”고 문제 삼는 통에 ‘나’는 음료수를 사들고 동네 이장을 찾아간다. 하지만 이장은 그 나무가 동네 노인회 것이라며 두 그루 값으로 30만원을 요구한다. 값은 치렀지만 울한 심정에 방죽 부근을 지날 때마다 저절로 욕설이 나오는 ‘나’는 그러나 2년 후 땔감 한 트럭을 몰고 마당에 들어서는 이장 앞에서 입이 절로 벌어진다.
작은 에피소드이지만 이 소설엔 자연을 해방하기 위해선 먼저 인간의 도덕성을 회복시켜야 한다는 작가의 철학이 묻어난다. 또 다른 수록작 ‘독방에 감금되었던 히말라야 여인’에서는 작가의 분신이라 할 최씨 성을 가진 ‘나’를 등장시킨다. 그리고 코리안 드림을 꿈꾸고 한국에 온 네팔 여성 찬드라 쿠마리 구룽이 병원 측의 어처구니없는 실수로 서울시립부녀보호소를 거쳐 용인정신병원에서 무려 6년간 감금 당한 이른바 ‘찬드라 사건’을 가감 없이 들려준다. 작가는 전화를 끊을 무렵, “땔감을 모으길 아홉 해째, 문득 밭둑에 앉았을 때 절망이 나의 전부를 꺾지는 못했다는 것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정철훈 문학전문기자 chj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