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마다 찬란함 간직한 ‘일부’ 응시하는 직관의 힘… 김명수 시집 ‘곡옥’
입력 2013-08-15 16:42
“금관은 아니지만/ 금관의 한 일부/ 저마다의 별들은/ 밤하늘 아니지만/ 밤하늘에 별들 있어/ 반짝이듯이/ 찬란함은 아니지만/ 찬란함의 한 일부/ 찬란함에 깃든/ 별들의 적요”(‘곡옥’ 부분)
출토유물에서 발견되는 장식용 구슬을 지칭하는 곡옥(曲玉)은 금관을 더 빛나게 하는 장식품이다. 금관 전체의 찬란함에 비추어보면 곡옥의 장식은 부분적인 것이고 금관의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이 시가 말하고 있는 것은 곡옥처럼 찬란함의 일부로서도 내밀한 가치가 있다는 것인데, 전체란 서로 연결돼 있는 부분으로 구성돼 있기에 부분 역시 전체로 변환될 수 있다는 말이다.
시력 34년에 이른 김명수(68·사진) 시인의 신작 시집 ‘곡옥’(문학과지성사)은 저마다의 찬란함을 간직한 ‘일부’의 세계를 응시하는 직관의 힘을 보여준다. 그 직관의 힘은 전체와 일부가 서로 조응하는 순간을 포착한다. “피어나는 꽃들이, 꽃들의 향기가 축생이 되었다// 내게 봄이 있었으니, 그 봄날도 봄볕도/ 축생이 되었다// 어머니가 내게 말씀하셨다/ 너는 5월에 소로 화했다// 네가 남긴 따스한 음성/ 따사로운 감정도 피어나는 꽃이다// 5월에 나는 소로 변했다/ 꽃들과 향기가 땅에 묻혔다”(‘축생’ 전문)
모든 것이 피어나는 5월은 꽃도 봄날도 봄볕도 향기도 축생도 탄생의 동시성으로 묶어버린다. 탄생의 동시성을 인정하기만 한다면 ‘어머니가 내게 말씀하셨다/ 너는 5월에 소로 변했다’가 가능한 것이다. 예컨대 이 시는 ‘5월에 나는 풀이 되었다’ 혹은 ‘5월에 나는 네가 되었다’로 얼마든지 변형이 가능하다. 5월이라는 전체에서 ‘나’는 무엇이라도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부분과 전체, ‘너’와 ‘나’의 구분은 이제 사라지고 만다. 하지만 어떻게? 대답은 ‘그렇게’라는 부사의 세계로 대신해야 할 것이다.
“꽃은 여러 송이이면서도 한 송이/ 한 송이이면서도 여러 송이/ 나무도 여러 그루이면서도 한 그루/ 한 그루이면서도 여러 그루/ 한결같이/ 네가 나에게 다가오는 모습/ 한결같이/ 향기와 푸름과/ 영원함은 그렇게”(‘그렇게’ 부분)
‘그렇게’라는 부사의 세계는 텅 비어 있다. 비어 있기에 한계를 지을 수 없는 가능성을 보여준다. 이때 시는 무한을 더듬는 언어가 된다. 김명수는 이제 ‘그렇게’ 시인이자 ‘그렇게’ 시인이 아닌 누구라도 무방하다.
정철훈 문학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