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곡 ‘뉴크 미 베이비’ 발표한 한대수 “아버지는 핵물리학자 아들은 반핵 가수… 참 얄궂죠”

입력 2013-08-15 16:46 수정 2013-08-15 16:53


“딸 양호가 태어났을 때 제 나이가 쉰아홉이었어요. 아이가 생기고서야 알게 됐죠. 돈 없으면 자본주의 사회에선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걸. 저 역시도 이젠 ‘화폐의 노예’가 돼버렸어요(웃음).”

‘물 좀 주소’ 등을 히트시키며 1970년대를 풍미한 가수 한대수(65). 지난 13일 서울 신촌 한 카페에서 만난 그는 딸 양호(6) 이야기를 할 때마다 목소리에 활기가 돌았다. 그는 “딸 때문에 친구 만날 시간이 없다” “애 고집이 얼마나 센지 말도 못한다” 같은 발언을 쏟아내며 연신 웃음을 터뜨렸다.

“언론에 많이 보도됐듯 마누라(43)가 병(알코올의존증)이 있잖아요? 거기다 애까지 제가 돌봐야하니 한동안 음악 할 겨를이 없었어요. 상황이 이렇게 되니 자유롭게 살던 지난날이 그리울 때도 있어요. 하지만 양호가 ‘아빠 사랑해’라고 말하면 그런 그리움 따위는 순식간에 녹아버리더라고요.”

이날 한대수를 만난 건 인터뷰 전날 발표된 그의 노래 ‘뉴크 미 베이비(Nuke Me Baby)’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기 위해서였다. ‘핵무기로 나를 공격하라’는 의미의 ‘뉴크 미 베이비’는 제목에서 짐작할 수 있듯 반핵(反核)의 메시지가 담겨 있다. 노래는 한대수가 6년 만에 발표한 신곡이기도 하다.

“한 달 전에 갑자기 핵 문제와 관련된 곡을 쓰고 싶더라고요. 예전부터 관심이 많은 주제였거든요. 저 같은 할아버지는 이렇게 살다 죽겠지만 젊은이들은 아니잖아요? 지구가 얼마나 망가졌는지 알아야 해요. 젊은이들이 문제의 심각성을 인지해야 해요. 인류는 파멸의 길을 가고 있어요.”

‘뉴크 미 베이비’는 파트를 쪼개 녹음하지 않고 노래 전체를 한 번에 부르는 ‘원테이크(One-Take)’ 방식으로 녹음한 곡이다. 경쾌한 비트 위에 포개진 한대수의 터프한 음색, 기타리스트 김목경(54)의 찐득찐득한 기타 선율이 인상적인 음악이다. 프로듀싱은 영국 인기 혼성듀오 사우스웨이가 맡았다.

“거칠면서 ‘영국 냄새’가 나는 노래예요(웃음). 아마 들어보면 최신 음악과 많이 다를 거예요. 요즘 노래는 성형수술한 얼굴처럼 매끈하잖아요? 하지만 제 음악은 감정이 살아있어요.”

한대수의 아버지는 1940년대 미국 코넬대에서 수학한 핵물리학자 고(故) 한창석(2010년 작고)씨다. 알려졌다시피 고인은 한대수가 일곱 살일 때 돌연 실종됐다 17년이 흐른 뒤 가족 앞에 다시 모습을 나타냈다. 당시 아버지는 과거 기억을 몽땅 잃어버린 상태였다. 한대수는 “아버지는 핵물리학자였고, 아들은 반핵을 노래하는 가수가 됐으니 내 운명도 참 얄궂다는 생각이 든다”며 웃었다.

인터뷰를 끝내고 자리에서 일어서기 전, 그가 이런 말을 남겼다. “예술이 왜 위대한지 아세요? 예술은 인간의 악한 마음을 정화시켜줘요. 즉, 예술이 발달한 사회가 좋은 사회예요. 저는 이제 다시 정규 음반을 만들 겁니다. 곡은 이미 많이 써놨으니 금방 들려드릴 수 있을 거예요.”

박지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