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 68주년] 아베, 개헌 않고도 평화헌법 허무는 효과 노린다
입력 2013-08-14 17:46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주변국의 경계와 우려에도 불구하고 집단적 자위권 도입을 서두르는 이유는 이 문제가 개헌을 하지 않고도 사실상 개헌 효과를 내면서 군사력을 보유할 수 있는 길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아베 총리의 자민당은 지난해 치러진 중의원 선거 압승을 바탕으로 지난달 참의원 선거에서도 승리해 중·참의원 과반수를 장악하고 있다. 하지만 중·참의원 3분의 2 이상으로 돼 있는 개헌 발의 요건을 과반수로 완화한 뒤 군대 보유와 교전 및 전쟁 포기를 명시한 헌법 9조 조항을 바꾸기에는 여전히 숫자가 부족하다.
여기에 연립여당인 공명당의 부정적인 기류와 한국, 중국 등 이웃 국가와의 관계 악화도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이런 상황에서 굳이 무리하게 개헌을 추진하기보다는 차라리 헌법 해석 변경을 통해 개헌과 비슷한 효과를 얻는 게 유리하다는 판단을 한 것이다.
즉 궁극적 목적인 군대 보유와 전쟁 포기를 명시한 헌법 9조 개정과 같은 효과를 내는 집단적 자위권을 우선적으로 도입하되 그 대상을 미국 외에 한반도 등으로 넓혀 사실상 무력사용을 무제한 적용할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 요미우리신문은 14일 자민당이 집단적 자위권 적용 범위를 당초 미국에서 벗어나 한반도 유사시 등으로 구체화해 공명당을 설득할 방침이라고 보도했다. 이렇게 되면 일본은 당사국인 한국에 사전 설명 없이도 북한의 위협을 근거로 한반도 문제에 개입할 수 있다는 것이다.
자민당은 또 집단적 자위권 행사가 가능한 사례로 일본으로 원유를 운반하는 해상 교통로에서의 기뢰제거 작업 등으로 명시키로 했다고 덧붙였다. 일본의 군사전문가조차도 일본이 가정한 상황이 지나치게 극단적이어서 사실상 군사력 사용을 위한 명분쌓기라고 보고 있다.
이 때문에 집단적 자위권 도입을 반대하는 일본 내 평화·호헌 세력은 아베 총리의 시도가 사실상 ‘개헌 쿠데타’라고 비판하고 있다. 그동안 유지해 왔던 전수방위 개념은 물론이고 해외 무력사용 금지 등을 한꺼번에 허무는 조치라는 것이다.
고이즈미 준이치로 정권 당시 내각법제국 장관을 지낸 사카타 마사히로는 “집단적 자위권 행사가 용인되면 일본은 국제법상 적법한 전쟁은 모두 다 할 수 있는 국가가 된다”고 단언했다.
고노 요헤이 전 관방장관은 13일 교도통신과의 인터뷰에서 “군대를 보유하고 방위대강을 개정해 끝없는 군비 경쟁의 계기를 만들 필요는 전혀 없다”며 “일본을 둘러싼 안전보장 환경이 변했다는 주장도 있지만 그럴 때일수록 더욱 외교적 노력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제훈 기자 parti98@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