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시각-신종수] 16만원 기꺼이 더 내게 해야
입력 2013-08-14 17:18
보수적인 성향의 한 지인이 지난주 광화문 촛불집회에 나가겠다는 말을 하기 전까지만 해도 솔직히 상황이 그리 심각한지 몰랐다. 조원동 청와대 경제수석이 1년에 16만원, 한 달에 1만3000원 정도만 세금을 더 내면 된다는 소리에 월급은 얼마 되지 않지만 까짓것 그 정도야 내면 되지 하는 생각이었다. 거위가 고통을 느끼지 않도록 깃털을 살짝 빼내는 식의 감내할 수준이라는 비유도 처음에는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짐은 곧 국가’라던 프랑스 루이 14세 시절의 장 바티스트 콜베르 재무장관이 ‘세금 징수 기술은 거위가 비명을 덜 지르게 하면서 최대한 많은 깃털을 뽑는 것’이라는 말을 했다는 대목을 접했을 때는 마치 상식의 지평이 넓어지는 것 같았다. 조 수석이 봉급생활자들은 서민들보다 여건이 낫지 않으냐면서 마음을 열고 받아들이기 바란다는 말에 하마터면 넘어갈 뻔했다.
그러나 정부가 세금 걷기 편한 월급쟁이들 돈만 털어간다는 소리에 마음이 상하기 시작했다. 의사 변호사 등 고소득 자영업자들의 경우 환자나 의뢰인이 현금을 내면 병원비나 수임료를 깎아주는 방식으로 탈세를 하는데도 세무 당국은 이를 찾아내 과세하는 것을 번거로워한다. 전군표 전 국세청장과 허병익 전 국세청 차장이 대기업에 대한 세무조사 무마 조건으로 억대의 뇌물을 받은 혐의로 구속 기소된 것을 보면 대기업들도 세금을 성실히 내는 것 같지 않다. 반면, 손쉽게 월급쟁이들의 유리지갑은 원천징수해 간다는 것이다.
‘삥’ 뜯기는 기분 들지 않게
1년에 16만원을 좋은 일에 기부할 수는 있어도 이런 식으로 뜯기는 것은 싫다. 유리지갑을 털리고 있다는 피해의식이 있는 상태에서 더 뜯어가려고 하면 적은 돈이라도 심리적 임계치를 넘을 수 있다. 세금은 돈 문제이지만 결국 감정의 문제가 될 수도 있다는 점을 실감했다. ‘16만원’과 ‘거위 깃털’이라는 말이 결국 ‘봉’을 잡는 데 사용하는 교묘한 언사라는 것을 깨달았을 때는 조세저항이란 것이 이렇게 시작되는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박근혜 대통령도 보고를 받고 사인을 했다가 나중에 여론이 악화되는 것을 보고 원점 재검토를 지시했다. 증세 없는 복지 공약을 내세웠던 박 대통령도 세율 인상이나 세목 신설이 아니라 비과세·감면 축소여서 증세가 아니라는 교묘한 논리에 깜박 넘어가 사인을 한 것 같다. ‘증세 없는 복지’ 공약에 꿰맞추기 위해 이런 저런 전문 용어를 써가며 증세가 아니라고 말하는 것은 불량배들이 영세상인들 돈을 뜯어가면서 ‘삥’이 아니라 ‘관리비’라고 하는 것과 별반 다를 바 없다.
복지국가는 가야할 방향
하지만 어쩔 것인가. 복지를 안 할 수는 없다. 보편적 복지든 선택적 복지든 복지국가는 우리나라가 가야 할 방향이다. 우리나라 재정 대비 복지지출 비율은 9.4%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꼴찌 수준이다. 소득세 세수는 국내총생산(GDP)의 3.8%로 OECD 평균 8.4%의 절반도 안 된다.
증세 없는 복지는 없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일반적인 견해다. 결국 국민들이 각자의 형편에 맞게 세금을 더 내게 해야 한다. 포퓰리즘 공약을 이행하기 위한 증세가 아니라 복지국가로 가기 위한 고통 분담이어야 한다.
고소득·전문직·지하경제에 대한 적극적인 과세 강화 방안도 마련해야 한다. 세금을 제대로 걷는 것도 중요하지만 잘 쓰는 것도 중요하다. 예산을 방만하게 운영하고 있다거나 복지예산이 여기 저기 새고 있다는 얘기가 들린다. 조세 형평성을 이루고, 지하경제를 양성화하고, 예산을 알뜰하게 사용하는 것이 전제가 될 때 조세저항도 줄어들 것이다. 결국 국민들의 조세저항은 그런 저항감이 생기게 만든 정부 잘못이다. 진정한 복지국가를 위해 16만원을 기꺼이 더 내고 싶은 마음이 생기게 만들어야 한다.
신종수 산업부장 jsh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