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전씨 비자금 더 이상 아니라고 우길 수 없다
입력 2013-08-14 17:19 수정 2013-08-14 23:32
검찰이 전두환 전 대통령의 조카 이재홍씨가 관리해 온 비자금 수십억원을 찾아냈다. 검찰 추징금환수팀이 수사체제로 전환한 후 처음 확인한 은닉재산이다. 이씨는 1990년대 초반 전 전 대통령으로부터 자금을 받아 서울 한남동의 부동산을 구입한 뒤 최근 이 부동산을 51억여원에 매각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씨는 범죄수익은닉처벌법 위반 혐의로 13일 체포됐다. 이로써 전 전 대통령 일가에 대한 포괄적인 재산 추적 작업도 더욱 속도를 내게 됐다.
또한 검찰은 전 전 대통령의 처남인 이창석씨가 당초 자신이 보유하고 있던 경기도 오산시 양산동 일대의 땅을 전씨 일가에게 분배하는 ‘재산관리인’ 역할을 했음을 뒷받침하는 문건을 확보하고 조세포탈 혐의 등을 적용해 14일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지난달 16일 검찰이 압수수색에 착수한 지 약 한 달 만에 전씨 일가에 대한 전방위 압박이 성과를 내기 시작하는 국면이다.
내란·뇌물죄 등으로 유죄 확정판결을 받은 전 전 대통령은 추징금 2205억원 가운데 1672억원을 내지 않은 채 버젓이 호화로운 생활을 누리고 있다. 세 아들도 특별한 자금원 없이 모두 수백억원대의 자산가 반열에 올라 있다. 그러나 “추징금으로 낼 돈이 없다”는 항변과는 달리 전씨 일가의 재산 빼돌리기 수법은 점차 전모가 드러나고 있다. 차남 재용씨는 아버지의 비자금으로 의심되는 돈으로 서울 이태원동의 수십억원대 고급 빌라를 사들였고 ‘공무원범죄 몰수 특례법’이 통과된 6월 27일 이 빌라 두 채를 팔았다. 장남 재국씨가 국내외에 여러 개의 서류상 회사를 설립한 정황도 포착됐다.
그런데도 전씨는 “죽은 권력에 대한 인민재판”이라며 억울해한다고 한다. 최근에는 전 전 대통령을 17년 동안 보좌한 민정기 전 청와대 비서관이 나서서 “취임 전부터 원래 재산이 많았다”고 주장했다. 일가 재산의 형성·증식에도 재임 시 받은 불법 정치자금이 섞이지 않아 추징당할 돈도 없다는 것이다.
검찰은 전씨가 재산관리인 이창석씨 등 이미 신분이 노출된 가까운 친인척들이 아닌 신분이 노출되지 않은 인사들을 통해 비자금을 관리해 왔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이재홍씨가 관리해 온 한남동 부동산의 경우처럼 친인척에게 일단 재산을 맡긴 뒤 또 다른 재산관리인을 둬 차명재산으로 관리하도록 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검찰은 이씨가 운영하는 부동산관리업체와 같은 제3의 관리인들을 철저히 추적해 차명재산을 최대한 입증해 내야 할 것이다.
전 전 대통령은 이제 더 이상 비자금이 없다고 우길 수 없다. 일가친척이 구속되는 망신을 당하기 전에 자식들을 설득해 추징금을 내는 결단을 내릴 것을 촉구한다. 추징금을 스스로 납부하고 국민과 역사 앞에 사죄하는 것만이 전직 대통령으로서 오점을 최소화하는 유일한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