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이 뭔지도 모르던 아이들, 그룹홈서 꿈 키운다… 방치된 조선족 아이들 품은 한국교회

입력 2013-08-14 17:10 수정 2013-08-14 15:00

지난 13일 중국 옌볜조선족자치구 훈춘시의 ‘찐구어 어린이집’. 열세살인 김성민(가명)군은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한 시간 동안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놨다. 세살 때 교통사고로 아버지를 잃은 성민이는 그때부터 철저히 혼자였다. 어머니는 돈을 벌기 위해 1년에 수개월씩 아들의 곁을 떠났고, 막노동을 하는 양아버지 역시 이곳저곳을 떠돌았다.

가난에 외로움까지 더하면서 성민이는 늘 불안했고 급기야 문제를 일으키기도 했다. 혼자 방황하던 그는 지난 달 찐구어 어린이집에 들어왔다. 대화가 끝날 무렵 성민이는 조심스레 꿈을 말했다. 돈 많이 버는 사업가가 되는 것이란다. 그는 “사장이 되면 떨어져 지낼 수밖에 없던 엄마와 함께 살 수 있지 않느냐”며 눈시울을 붉혔다. 어린이집 관계자는 성민이가 어린이집에 들어 온 뒤 많이 밝아졌다고 했다.

찐구어 어린이집은 훈춘시 당국과 외환은행 나눔재단, ㈔참된평화를만드는사람들(참된평화), 코리아디아코니아(K.D·한국교회희망봉사단) 등 교회 구호단체와 한국 교회들이 지난해 12월 세운 조선족 아이들을 위한 그룹 홈이다.

이곳에는 부모가 없거나 경제적 어려움 등으로 방치됐던 초등학교 5학년∼고등학교 1학년 조선족 아이 8명이 함께 살고 있다.

어린이집은 56㎡(17평) 규모의 스튜디오형 아파트 2채로 이뤄져 있었다. 남·여 학생을 한 집에 둘 수 없기 때문이다. 14층 아파트 창가에서는 훈춘시 전경은 물론 두만강과 멀리 북한 지역이 한눈에 들어왔다. 현재 도시개발이 한창이라 훈춘시 곳곳에 고층건물이 올라가고 있었고, 러시아 접경지역인 탓에 외국인 관광객도 많았다. 발전하고 성장하는 훈춘시 뒷골목에는 성민이와 같은 한국인 디아스포라들이 300명이 넘는다. 옌볜자치구 전체에는 3000명 이상이 될 것으로 추정된다고 참된평화 관계자는 전했다.

어린이집에서는 고등학교 졸업 때까지 8명의 아이들을 책임지기로 했다. 학비와 통학비를 지원하고, 학습 도우미가 매일 찾아와 주요 교과목을 가르친다. 영어 등 외국어는 보습학원을 통해 익힌다. 덕분에 성적도 조금씩 오르고 있다. 향후 옌볜대 등 옌지에 있는 대학생과 이곳 아이들을 ‘멘토-멘티’로 엮어주는 ‘씨앗학교’ 프로그램도 진행할 계획이다. 자칫 방황하기 쉬운 아이들에게 롤모델을 만들어주자는 취지다.

이곳 아이들은 ‘희망2세’로 불린다. 꿈과 소망이 없는 친구들이 이곳에서 희망을 발견할 수 있게 됐다는 뜻에서다. 참된평화 관계자는 “처음에는 고개도 들지 못하고 꿈이 무엇인지도 모르던 아이들이 지금은 먼저 다가와 자신의 꿈을 이야기한다”고 전했다. 범죄로 엄마를 잃은 15살 유선(가명)이는 공안(경찰)을, 할머니가 아픈 영미(가명)는 의사를, 가난 때문에 부모와 떨어져 살게 된 강석(가명)이는 명문대인 칭화대 입학을 꿈꾸고 있다.

조선족인 오금숙(61·여) 원장은 “조선족으로 중국 사회에서 살아가려면 대학을 나와야만 하는데, 한화로 연간 200만원 정도인 학비를 마련할 생각을 하면 벌써부터 가슴이 먹먹하다”며 “중국에 흩어져 어렵게 살아가는 어린 동포들을 위해 한국 교회가 함께해 주시면 정말 감사하겠다”고 말했다.

훈춘=글·사진 최승욱 기자 apples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