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염성덕] 수명 진단의 두 얼굴

입력 2013-08-14 18:07

남은 수명이 얼마나 될지 궁금해 하지 않는 사람도 있을까. 젊은층보다는 노년층으로 갈수록 자신의 여명(餘命)을 알고 싶어 하는 이들이 많을 것이다. 앞으로 3년 안에 이런 궁금증을 해소할 길이 열릴 것으로 보인다.

사람의 남은 수명을 측정하는 레이저 진단법이 개발됐다고 영국 선데이타임스가 최근 보도했다. 수명 진단법을 개발한 영국 랭커셔대학 연구팀은 3년 이내에 진단 기술을 상용화해 병원에 보급하겠다고 장담한다. 진단 데이터가 축적되면 수명 진단의 정확도가 높아질 것을 전제로 한 것이다.

수명 진단은 손목시계형 진단기를 통해 신체 내피세포에 레이저를 쏘아 신체 조직의 진동 반응을 재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측정된 수치는 제로부터 100까지 사망위험도로 산출된다. 이 수치를 보고 피검사자는 자신의 여명을 예상할 수 있다. 연구팀은 이 진단법을 활용하면 다른 질병의 진행 정도도 파악할 수 있다고 말한다.

자신의 남은 수명을 정확히 알게 된다면 어떤 생각을 하게 될까. 피검사자에게 좋은 영향을 줄까, 나쁜 영향을 미칠까. 세상만사가 그렇듯이 마음먹기에 달렸을 것이다. 의사로부터 시한부 선고를 받은 말기 암 환자들 가운데 여생을 보내는 방식이 천차만별인 것처럼 이로울 수도 있고 해로울 수도 있을 것이다.

롭 라이너 감독이 만든 영화 ‘버킷 리스트-죽기 전에 꼭 하고 싶은 것들’에 나오는 두 주인공처럼 산다면 자신의 임종시기를 안다는 것은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자동차 수리공 카터와 재벌 사업가 에드워드는 중환자실에서 만난다. 카터와 에드워드는 살아온 과정이 너무 다르지만 친구처럼 지내며 버킷 리스트를 작성한다.

세렝게티에서 사냥하기, 문신하기,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소녀와 키스하기, 눈물이 날 때까지 웃어보기, 모르는 사람 도와주기…. 의기투합한 이들은 병원 문을 박차고 나가 버킷 리스트에 있는 것들을 실천한다. 살날이 얼마 남지 않았지만 유익하고 보람되고 유쾌하고 흥미진진한 나날을 보낸다.

‘인생에서 가장 후회하는 것은 살면서 한 일들이 아니라, 하지 않은 일들’이라는 영화의 메시지처럼 후회하지 않게 살려고 노력한다. 아마 시한부 선고를 받지 않았다면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생활에 쫓겨 살다가 허무하게 생을 마감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여생이 얼마 남아 있지 않다는 이유로 낙담하고 절망하고 자기 인생을 저주하고 결국 삶을 포기한다면 수명 진단이 되레 독이 될 수 있다.

염성덕 논설위원 sdyu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