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운동 얼 스민 中 치치하얼에 ‘한국의 美’ 수놓다

입력 2013-08-14 16:45


막 내리는 ‘2013 한·중 장애인 미술교류전’

중국 헤이룽장성 치치하얼박물관에서 13일 ‘2013 한·중 장애인 미술교류전’이 개막됐다. 헤이룽장성 성도(省都)인 하얼빈에서 서쪽으로 500㎞ 정도 떨어진 치치하얼은 800년 역사와 570만 인구를 지닌 도시다. 1930년대 지청천(1888∼1957) 등 독립운동가들이 항일지하운동을 펼친 곳이기도 하다. 4회째를 맞은 한·중 장애인 미술교류전은 지난 6월 서울에서 열린 데 이어 치치하얼로 장소를 옮겨 막을 올렸다.

중국장애인연합회가 주최하고 문화체육관광부·한국장애인미술협회·한국장애인개발원이 후원하는 전시에는 한국 작가 30여명과 중국 작가 100여명이 동양화·서양화·서예·공예 등 다양한 작품을 출품했다. 15일까지 이어진 이번 전시에 참가한 한국 작가들은 “독립운동가들의 얼과 정신이 스며있는 치치하얼에서 광복절에, 한국미술을 선보이게 돼 감개무량하다”고 소감을 밝혔다.

개막 행사에는 리쩌진 중국장애인연합회 부주석(차관급), 허위화 헤이룽장성장애인협회 이사장, 마짱정 치치하얼시 부시장, 김충현 한국장애인미술협회 회장, 윤종선 문체부 예술정책과 사무관을 비롯한 내외빈과 한·중 작가 등 200여명이 참석했다. 개막식 사전행사에선 중국 장애인 학생들이 해금 연주와 전통무용을 선보여 갈채를 받았다.

리쩌진 부주석은 개막식 인사를 통해 “장애미술인들이 몸은 불편해도 정신적으로는 아무 장애가 없다”며 “적극적으로 활동하는 양국 작가들의 작품을 통해 희망의 빛과 행복의 메시지를 읽을 수 있다”고 말했다. 장성 출신인 리쩌진 부주석은 훈련 중 폭탄이 터지자 부하들을 지키기 위해 몸으로 덮쳐 파편이 눈에 튀면서 실명했다. 이곳에서는 ‘영웅’으로 존경 받는 인물이다.

한국 작가들의 사연도 가지가지다. 김충현 회장은 1997년 가구공장에서 일하다 기계에 하반신이 깔리는 바람에 양쪽 다리를 못 쓰게 됐다. 지체장애 1급으로 절망의 시간을 보내던 그는 기독교 신앙생활에 충실하고 서예에 몰두하면서 새로운 삶을 얻게 됐다. 이번 전시에서는 서산대사의 한문 글씨 작품을 출품했다.

하반신을 제대로 움직이지 못하지만 ‘장애인미술가의 희망축제’ 등에 적극 참가해온 고민숙(지체1급·서양화) 작가는 결혼 후 1년 만에 팔다리가 마비되는 불치병에 걸렸다. 첫 번째 시련은 이혼이었다. 자신에게 다가온 고통을 참을 수 없었다. 죽고 싶은 마음이 가득했다. 그때 만난 것이 하나님이고 예술이었다. 인내하고 또 인내한 세월 끝에 작가로 거듭났다.

세 살 때 소아마비에 걸려 그림으로 장애를 극복한 금미란(지체2급·서양화) 작가. 왼손을 사용하지 못하지만 씩씩하고 활달한 성격으로 늘 미소를 잃지 않는다. 휠체어에 의지하면서도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멋쟁이 작가 김교석(지체1급·서예), 태어날 때부터 청각장애를 앓으면서도 미술을 통해 새 삶을 찾은 이봉화(청각3급·서예)·성기(청각2급·한국화) 형제 등이 전시에 참가했다.

중국장애인연합회가 참여 작가 가운데 주는 1등상(대상)에는 금미란 작가의 ‘결실’이 뽑혔다. 열매가 익어가는 가을 풍경을 그린 수채화 작품으로, 따스한 채색과 감성적인 구도가 관람객들로 하여금 평온과 행복을 느끼게 한다고 호평 받았다. 고민숙 작가의 서양화 ‘우리동네잔치’, 이성기 작가의 한국화 ‘국화’는 각각 2등상을 받았다.

금미란 작가는 “불굴의 정신과 열정으로 갖가지 역경을 이겨내고 좋은 작품으로 결실을 거두듯 많은 사람들이 그림을 보고 사랑과 희망의 결실을 맺기를 바라는 마음을 표현했다”고 작업의도를 밝혔다. 그는 “장애인 작가의 작품성은 떨어진다는 편견, 수채화는 물감을 덧칠할 수 없기 때문에 작업이 어려운데도 유화에 비해 낮게 보는 선입관을 바로잡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앞서 12일 두루미 서식지로 유명한 자룽자연보호구역에서 한국 작가들의 시연회가 열렸다. 김충현 회장이 한글로 ‘머리에는 지혜가 가슴에는 사랑이 얼굴에는 미소가’를 쓰는 등 실력을 뽐냈다. 이봉화·성기 형제는 치치하얼 장애인복지회관에 작품을 기증하기도 했다. 한·중 문화예술 교류와 우정을 넓힌 이 행사는 내년에 베이징에서 열릴 예정이다.

치치하얼(중국)=글·사진 이광형 선임기자 gh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