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질녘 금강은 황포돛배 추억 기억할까… ‘이야기 보따리’의 고장 익산

입력 2013-08-14 16:46


“하늘은 맑고 날은 따뜻해 물결 또한 잔잔하다. 파도도 일지 않으니 좌우 산천의 경치가 밝고 아름다워 여기저기 마을은 빗살처럼 가지런히 정돈되어 있다. 대쑥 등속으로 엮은 대뜸(蓬) 발을 걸고 주위를 바라보니 양도 사이가 아름다운 명승지임이 틀림없다.”(‘을해조행록’ 중에서)

조선 고종 때 함열현감 조희백은 12척의 조운선에 성당창(聖堂倉) 세곡을 싣고 1874년 봄 전북 익산의 성당포구를 출항했다. 그는 익산을 비롯해 금산 남원 등 호남 여덟 고을에서 거둔 세곡을 배에 싣고 금강과 서해를 거쳐 강화에 이르기까지의 모든 과정을 을해조행록(乙亥漕行錄)이라는 항해일지로 남겼다.

을해조행록은 세곡을 배에 싣고 운반하는 과정, 세곡 운반에 종사하는 인원, 세곡 운송 선박에 대한 상세한 기록을 담고 있어 19세기 후반의 조운(漕運)과 해상로를 이해하는 귀중한 자료이다. 특히 간결한 필치로 금강과 서해를 지나는 여정을 서정적으로 묘사한 조희백의 글은 조선 후기 해양을 소재로 한 기행문학의 진수를 보여준다.

호남평야의 세곡을 실어 나르던 성당포구는 한때 전국 9대 조창에 꼽힐 만큼 흥성했던 마을이지만 지금은 쇠락해 평범한 포구마을에 지나지 않는다. 140년 전 조운선에 곡식을 싣던 모습을 지켜본 느티나무와 은행나무 고목은 그때 그 자리를 지키고 있지만 성당창은 흔적조차 없다. 오로지 금강 지류인 산북천 하구에 정박한 작은 배가 옛날에 포구였다는 사실을 증명할 뿐이다.

성당포구마을에서 산북천을 건너면 금강자전거길이 일직선으로 시원하게 뻗어 있다. 금강자전거길 주변은 본래 습지였으나 논으로 이용되다 4대강 사업으로 다시 습지로 복원된 용안생태습지공원. 드넓은 생태공원에는 갈대를 비롯한 습지식물이 자라고 탐방로와 함께 캠핑장도 조성돼 있다.

용안생태습지공원이 끝나면 금강변을 따라 억새밭이 광활하게 펼쳐진다. 한줌 강바람에도 파도타기를 하는 가녀린 억새는 4m까지 자라는 거대억새. 농촌진흥청이 식재한 거대억새는 바이오에탄올을 생산하는 에너지원으로 웅포 및 용안지구 일대 184㏊에 식재돼 수변구역 생태복원은 물론 익산을 대표하는 관광자원으로 개발 중이다.

금강을 거슬러 오르던 금강자전거길은 나바위성지로 유명한 화산(華山)에 가로막혀 우회한다. 충남 논산 강경읍과 인접한 화산은 정상에 광장처럼 넓은 너럭바위가 있어 나바위로 불린다. 우암 송시열이 강경에 팔괴정을 짓고 후학을 양성할 때 창밖으로 보이는 야트막한 산이 너무 아름다워 화산이라 명명하고 정상 서쪽 바위에 글자를 새겼다. 정상에 설치된 망금정은 유장한 세월을 흐르는 금강이 한눈에 들어오는 곳이다. 망금정(望錦亭)은 금강을 조망하는 정자라는 뜻.

화산은 중국에서 사제 서품을 받은 김대건 신부가 배를 타고 귀국하다 풍랑을 만나 죽을 고비를 수없이 넘긴 후 첫발을 디딘 곳. 이를 기념해 1907년 서울 명동성당을 설계한 프와넬 신부가 한옥 양식의 화산성당을 건축했다. 훗날 고딕식 종탑을 세우고 나바위성당으로 개명했다. 한지 스테인드글라스가 이색적인 성당 안에는 남녀석을 구분하기 위한 칸막이 기둥과 김대건 신부의 머리뼈 일부가 봉안돼 있다.

‘종교 백화점’으로 불리는 익산을 대표하는 교회는 1929년 건립된 두동교회. 상당면에 위치한 두동교회는 홍수로 상당포구에 떠내려 온 소나무를 신자들이 매입해 지어 함석지붕이 고졸한 멋을 풍긴다. 두동교회는 남녀유별의 사회상이 반영된 ‘ㄱ’자형 건물로 강대상을 중심으로 남성과 여성이 따로 앉아 예배를 드렸다. 교회 옆에는 나무로 탑을 쌓아 만든 종각도 복원돼 초기 개신교 건축사 연구에 소중한 자료로 평가받고 있다.

익산만큼 재미있는 이야깃거리를 간직한 고장도 드물다. ‘홍길동전’으로 유명한 허균(1569∼1618)은 조선시대 최초의 향토음식 품평서인 ‘도문대작(屠門大嚼)’을 유배지인 익산에서 저술했다. ‘도문’은 푸줏간의 문을 의미하고, ‘대작’은 크게 씹는다는 뜻. 현실에서 먹을 수 없는 고기를 상상하며 푸줏간 문을 향해 입맛을 다신다는 뜻이다.

허균이 유배를 온 곳은 함라한옥마을. 함라산 동쪽 기슭에 위치한 마을은 일제강점기에 만석꾼 3명이 탄생한 부유한 고을로 인심도 좋았다. 삼부잣집 마을을 자주 찾은 명창 임방울이 즐겨 불렀던 호남가에서 ‘인심은 함열인디∼’로 시작하는 가사의 함열이 바로 이곳이다. 하지만 아무리 부자마을이라도 유배자에게 진수성찬을 대접할 수는 없었을 터.

젊은 시절부터 전국팔도를 주유하며 맛있는 음식을 섭렵했던 허균에게 함열을 비롯한 전라도의 음식은 ‘그림의 떡’이나 진배없다. 그는 도문대작에서 방풍죽은 강릉, 석이병은 표훈사, 백산자는 진주, 다식은 안동, 밤다식은 밀양, 칼국수는 여주, 엿은 개성, 콩죽은 북청산이 명물이라고 소개하면서 입맛을 다셨을 것이다.

돌담길이 아름다운 함라한옥마을은 조선 후기 만석꾼인 김안균, 조해영, 이배원이 서로 부를 과시하며 살던 곳이다. 비록 퇴락해 일부만 남았지만 1920년대에 지어진 한옥의 웅자가 그들의 부를 짐작하게 한다. 문화재로 지정된 삼부잣집 마을의 돌담길에 들어서면 유일하게 출입이 자유로운 조해영 가옥이 잡초에 묻혀 있다. 열두대문으로 유명한 조해영 가옥은 퇴락해 지금은 안채와 별채만 남아 옛 영화를 반추하고 있다.

함라한옥마을에서 벚나무 터널을 달려 만나는 웅포 곰개나루는 일몰이 아름다운 강변마을로 유명하다. 웅포(곰개)는 지형이 곰의 형태를 닮은 포구라는 뜻. 나바위에서 마을길과 강변길을 달려온 금강자전거길은 웅포 곰개나루에서 나포뜰을 거쳐 종착지인 군산의 금강하구둑까지 둑길을 달린다. 웅포 곰개나루 건너편은 영화 ‘공동경비구역 JSA’를 촬영한 충남 서천의 신성리 갈대밭.

바다처럼 폭을 넓힌 금강이 전북과 충남의 경계를 따라 흐르는 장관을 보려면 녹차나무의 북방한계선인 함라산을 올라야 한다. 해질녘 함라산 산악자전거길을 4㎞ 달려 녹차밭 사이로 난 등산로를 오르면 웅포 곰개나루에서 한껏 넓어진 금강을 벌겋게 채색하는 일몰을 만난다. 저녁노을에 붉게 물든 금강을 미끄러지는 황포돛배, 그리고 서로 마주보는 익산과 서천의 강마을은 함열현감 조희백의 ‘을해조행록’에 묘사됐던 바로 그 풍경이다.

익산=글·사진 박강섭 관광전문기자 kspar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