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덕영 장로 칼럼-종교인과 신앙인 (51)] 을의 반란
입력 2013-08-14 09:41
얼마 전, 부서 책임자와 부하 직원 사이에 감정싸움이 있었다. 부하 직원이 책임자에게 심한 욕설과 함께 인격을 모독하는 발언을 한 것이다. 이럴 때 회사는 인사위원회를 열어 부하 직원을 문책하는 것이 당연하다.
그러나 부하 직원의 항변 또한 이유가 타당했다. 부서 책임자는 실무를 손에서 놓은 지 오래 됐고 실질적인 업무는 본인이 중심이 되어 처리한다고 한다. 책임자는 개인적인 업무나 보고 일찍 퇴근한다는 것이다.
알아보니 실제로 그 직원의 이야기가 상당히 근거가 있었다. 실무를 못하니 그 밑에 있는 직원들이 책임자를 무시하고, 업무 지시가 통하지 않으니 책임자의 권위가 떨어졌다.
교회도 마찬가지다. 교회에서 목사님의 영성이 떨어지면, 목사님의 모든 행동이 곱게 안 보이기 시작한다고 한다. 그래서 이번에 한 대형 교회에서 논문 표절 시비가 생겼고, 불신 속에서 목사님이 징계를 받는 사태가 일어났다. 또 어떤 교회에서는 돈 문제로 목사님이 사직하는 경우도 있었다. 세습 문제, 여자 문제 등으로 물의를 일으킨 목사님이 사회적인 이슈가 되어 교회의 위신을 실추시킨 적도 있다. 이 모든 것이 영성 부족으로 인해 교인들의 신앙적 욕구를 만족시키지 못했기에 일어난 일이라고 생각된다.
목회자는 사회적 경험 면에서 교인에 못 미치고 전문 지식도 전문직 교인에게 못 미친다. 요즘 성도들의 성경 지식 수준도 보통이 아니다. 목회자는 이제 지식을 자랑하지 말아야 한다. 신문기사, 책 속의 이야기로 서툰 설교를 하면 교인들은 금방 알아챈다. 성령을 받아 영적인 파워를 갖추지 않으면 을의 반란을 진압할 길이 없다. 성령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대로 대언해야 존경을 받고 높임을 받는다. 영성만이 목회의 진정한 방법이라고 말하는 신학자들의 고백이 이해가 된다.
CEO 목회자를 꿈꾸는 목회자는 이제 을의 마음을 읽지 못하는 자다. 예전 어머니들은 학교를 제대로 다니지 못했기에 지식은 없었다. 그러나 어머니를 무시하는 자식은 없다. 그 어머니의 지혜와 사랑을 죽을 때까지 못 잊고 감사한다. 목회자도 어머니 같은 목회를 하는 분은 존경을 받는다. 아무리 교인이 지위가 높고 부유해도 하나님 앞에서는 겸손하다. 진실로 하나님의 말씀으로 훈육하고 사랑으로 기도해 주면 정말 존경하는 목사님으로 인정받게 된다. “성령을 받지 않고 어떻게 목회를 하십니까?”라는 질문을 누가 거부할 수 있을까. 성령을 구하고, 오늘도 살아계시고 동행하시는 그의 존재를 확신하며, 이것에 감격하여 교인들에게 말씀을 전한다면 세상에서 영적으로 지친 신도들에게는 단비가 될 것이며 그들에게서 감사함으로 보답 받을 것이다. “늙은이를 꾸짖지 말고 아버지께 하듯 하며, 젊은이에게는 형제에게 하듯 하고, 젊은 여자에게는 온전히 깨끗함으로 자매에게 하듯 하라.” 성경 말씀이다.
이것이 을의 반란을 막는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회사의 업무를 수행할 때에도 이 성경 말씀에 따라 행하면 을에게 사랑 받는다. 그러나 절대로 실무를 놓치지 말아야 한다. 실무를 놓치면 업무의 핵심을 꿰뚫지 못한다. 그러면 부하 직원이 책임자를 무서워하지 않게 되고 무시한다. 젊은이여. 업무를 할 때 윗사람 됨을 즐기지 말고, 게을러지지 말며, 도장 찍는 것만 본인의 일로 생각하지 말라. 뒤에서 을이 지켜보고 있다. “따르릉, 따르릉, 비켜나세요. 자전거가 나갑니다. 따르르르릉. 저기 가는 저 사람 조심하세요. 우물쭈물 하다가는 큰일 납니다.” 어렸을 때 즐겨 부르던 동요다.
지식의 변천, 환경의 변동, 인간관계의 변화 등 모든 것이 급변하는 각박한 이 사회 속에서 자신의 위치를 확고히 하지 않고 방심하면 낙오할 수 있다. 깨어 기도하지 않으면 언제 주님의 재림이 올지 모른다. 두발 자전거는 움직이지 않으면 넘어진다. 우리의 영적 생활도 계속 기도하지 않으면 넘어진다. 우선 나부터 깨어 기도해야겠다. 글은 이렇게 써도 때때로 잊고 게을러질 때가 많다. ‘성령 하나님, 부디 저를 도와주시옵소서’ 하고 기도해 본다.
한국유나이트문화재단 이사장, 갈렙바이블아카데미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