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쪽방촌 노인들 고통의 여름나기] 24시간 찜통… “푹푹 쪄도 그저 견딜 수밖에”
입력 2013-08-14 05:05
13일 오전 10시30분쯤 서울 돈의동 쪽방촌. 한 사람이 간신히 지나다닐 정도의 좁은 골목마다 부채를 든 주민들이 집 앞 문턱에 걸터앉아 있었다. 찌는 듯한 더위에 아침 기온이 벌써 28도까지 올랐다. 한 쪽방 문을 열어보니 손바닥만한 방안에서 후텁지근한 공기가 밀려나왔다. 불과 2분 정도 골목을 걷는데 온몸에 땀이 비 오듯 쏟아졌다. 휠체어를 타고 집밖에 나와 있던 유정돈(72)씨는 “방이 너무 좁고 더워 견딜 수가 없어서 밖에 나와 있다”며 “죽지 못해 산다”고 했다.
이 동네 남자들은 아예 윗옷을 벗고 다녔다. 웃통을 벗은 채 2.3㎡(0.7평) 남짓한 쪽방에 앉아 있던 고모(50)씨는 물에 적신 파란 수건을 가슴에 둘렀다. 고씨는 “젖은 수건으로 하루하루 견디고 있다”고 했다. 고씨 방에는 창문이 있지만 너무 작아 바람은 들어오지 않았다. 구석의 선풍기는 10년 전 이곳에 살던 이가 남기고 간 거라고 했다. 고씨는 “낮에 달궈진 선풍기를 밤에 틀면 더운 바람만 나온다. 있으나마나”라고 했다.
폭이 20㎝에 불과한 계단으로 3층에 올라가자 윤모(45)씨가 방문을 연 채 거의 벌거벗은 상태로 자고 있었다. 이마에는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혀 있었다. 그의 방에는 아예 창문이 없다. 빈 담뱃갑과 술병만 바닥에 널브러져 있다. 매일 쪽방촌에 혈압검사를 하러 온다는 종로보건소 직원 최명숙(62)씨는 “기록적인 폭염 때문에 벗고 지내는 쪽방촌 주민이 많다”고 했다.
몸이 불편한 쪽방 주민들에게 더위는 더 서럽다. 김삼인(63)씨는 방 옆에 달려 있는 수도꼭지를 틀고 세수를 했다. 8가구가 이 수도꼭지 한 개로 씻는다. 쭈그린 채 얼굴을 닦던 김씨는 “샤워장이 있기는 한데 다리가 아파 거기까지 갈 수가 없다”고 했다. 김씨의 2㎡(0.6평) 방은 두 사람이 앉아 있기도 힘들 만큼 좁았다. 이불더미 옆에 먹다 남은 컵라면 용기 등 쓰레기가 쌓여 있다. 준비해 간 온도계를 보니 30도가 넘었다.
박의수(91) 할아버지의 방 한쪽에는 소변을 담아놓는 쓰레기통이 있었다. 방 앞에 화장실이 있지만 워낙 고령이라 움직일 힘이 없어 이 통을 이용한다. 지린내가 진동하는 방에서 점심을 먹던 박씨는 쪽방 생활 15년째라고 했다. 그는 “여름마다 항상 더웠지만 올해는 유난히 더운 것 같다”고 한숨을 쉬었다.
정부에서 65세 이상 노인을 대상으로 선풍기 120대를 지급해 쪽방촌 620여 가구에 대부분 선풍기가 있었다. 그러나 일부 주민은 선풍기에 대한 불평을 터뜨렸다. 50년 이상 쪽방살이를 했다는 최오례(81·여)씨는 “받은 선풍기를 몇 번 틀었더니 고장이 났다”고 했고, 65세가 안 돼 선풍기를 받지 못한 손모(52)씨는 “나이가 많든 적든 더운 건 똑같은데 정부가 너무 아끼는 것 같다”고 말했다.
오후 2시가 되자 기온은 31도까지 치솟았다. 근처 교회에서 마련한 무더위 쉼터에 누워 있던 한 주민은 “집에 가기 싫다”고 했다. 낮에 뜨거워진 방은 밤에도 열기가 빠져나가지 않아 그야말로 지옥이 된다.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다 보면 다시 푹푹 찌는 낮이 찾아온다. 쪽방촌은 24시간 더위에서 벗어날 수 없는 곳이다. 손씨는 “아무리 더워도 우리는 갈 데가 없다. 제발 빨리 더위가 끝나기를 바랄 뿐”이라고 말했다.
박세환 기자 foryo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