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祖父가 지켜낸 祖國 국민 되다니…” 감격

입력 2013-08-13 17:46 수정 2013-08-13 22:00


중국 옌지시에서 태어난 이영복(31)씨는 어린 시절 고조할아버지 이야기를 들으며 자랐다. 이씨의 할아버지는 고조할아버지를 일본 제국주의에 맞서 싸운 독립투사였다고 설명했다. 고조할아버지는 홍범도 장군과 함께 대한민국 임시정부 산하에 대한독립군을 조직한 이명순 선생이었다. 이명순 선생은 항일 독립군 부대 중 하나였던 ‘대한국민회군’ 사령관을 지내며 일본군을 상대로 수많은 전투를 치르다 전사했다. 1986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됐다.

이씨는 2005년 한국에 들어왔다. 지방의 한 사립대학에서 유학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중국에서 돈을 보내주던 어머니가 병을 얻어 쓰러졌고, 이씨는 학업을 중단하고 일을 시작했다. 일용 노동직부터 식당 웨이터까지 가리지 않았다. 그러나 유학비자로 입국해 취업하는 것이 불법이었다. 사장들은 불법체류자가 된 이씨의 신분을 악용해 임금을 제대로 주지 않았다. 이씨는 2008년 중국으로 강제 추방될 때까지 고조할아버지의 이야기를 입 밖에 꺼내지 않았다. 이씨는 “법을 어겼다는 사실이 할아버지의 독립정신을 더럽힌 것만 같아 죄송했다”고 말했다.

이씨는 광복절을 이틀 앞두고 대한민국 국민이 됐다. 외국 국적을 가진 독립유공자의 후손에게 특별 귀화를 허가토록 하는 국적법에 따른 조치다. 이씨는 “고조할아버지가 목숨을 걸고 지켜낸 이 나라에서 차별받지 않는 떳떳한 국민으로 살고 싶다”고 말했다. 법무부는 13일 이씨를 비롯해 대한민국 국적을 취득한 독립유공자 후손 17명에게 국적증서를 수여했다. 후손들은 모두 중국 동포였고, 대부분 불법체류자 신세로 국내에서 궂은일을 견뎌내고 있었다.

1920년대 안동 비밀결사조직에서 활동하다 옥살이를 했던 고(故) 김술로 선생의 손녀 3명도 나란히 한국 국적을 얻었다. 세 자매의 언니 김윤애(53)씨는 1992년 입국해 20여년간 불법체류자 신분으로 식당 등에서 일했다.

지난해 할아버지가 독립유공자로 인정되면서 김씨는 한국으로 특별 귀화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김씨는 할아버지의 독립운동 활동서류 등을 수집했지만, 후손 입증은 쉽지 않았다. 중국 내 출생서류 등이 부실한 탓이었다. 결국 유전자 감정까지 받은 끝에 김씨 자매는 할아버지의 손녀임을 인정받게 됐다. 한국에 입국한 지 21년 만이다. 김씨는 “언제 쫓겨날지 몰라 늘 불안한 마음으로 살았다”며 “이제 할아버지의 고향에서 대한민국 국민으로 살게 돼 매우 기쁘다”며 눈물을 흘렸다.

법무부는 독립유공자 후손들이 국내에 안정적으로 정착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방안도 마련했다. 법무부는 오는 15일부터 비영리법인 ‘동포교육지원단’과 협업체계를 구축하고, 독립유공자 후손들이 자격증을 취득할 때까지 기술교육 비용을 지원키로 했다.

또 국내 학교에 재학하고 있는 후손에 대해서는 장학금을 지급한다. 독립유공자 후손들에 대한 국적증서 수여식은 2006년 처음 시행됐다. 2006년 이후 해외 독립유공자 후손 총 853명이 한국 국적을 얻었다.

정현수 기자 jukebox@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