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래 칼럼] 야스쿠니신앙은 파멸을 부를 뿐인데
입력 2013-08-13 17:37
“참배는 민주주의를 폐기하고 침략의 역사를 옹호하는 것과 조금도 다를 바 없어”
야스쿠니의 계절이 또 돌아왔다. 해마다 8월 15일이면 일본 보수 정치가들은 태평양전쟁 패전일(그들 말로는 종전일)을 기념한다며 야스쿠니신사 참배에 열을 올리기 때문이다.
주변국의 시선은 아랑곳하지 않고 벌이는 그들의 행보는 마치 반역사적인 신흥종교의 신앙과 흡사하다. 우리가 야스쿠니 신앙을 크게 경계하는 까닭은 비단 그곳에 A급 전범이 합사돼 있기 때문만은 아니다. 전후 일본의 정체(政體)를 송두리째 부정하는 것으로 비치기 때문이다.
메이지유신(1868) 직후 새 정부는 국민 통합의 정신적 근거로서 천손(天孫)임을 강조하는 등 천황의 신성성을 들고 나왔다. 구체적인 한 방안으로서 천황의 현실정치 지배를 옹호하는 사상을 마련하기에 이른다. 일본의 전통적인 자연종교인 신도(神道)를 국가신도로 격상시키고 각 지방에 산재해 있는 신사(神社)를 중앙 계열화하는 한편 천황을 그 최상층의 신관으로 자리매김한 것이다.
신사의 중앙 계열화는 크게 두 축으로 진행됐다. 하나는 신화 속 천황가의 조상을 신으로 떠받드는 이세(伊勢)신궁과 다른 하나는 천황을 위해 전장에서 죽은 이들을 신으로 떠받드는 야스쿠니신사다. 이세신궁을 정점으로 전국의 신사는 관폐사(官幣社), 국폐사(國幣社), 별격 관폐사로 조직화됐고, 천황의 칙령으로 만들어진 야스쿠니는 이세신궁과 견줄 정도로 위상이 높아지면서 그 휘하에 호국신사-충혼탑-충혼비로 수직 계열화됐다.
패전 후 연합군은 국가신도 해체를 추진했지만 중앙 계열화 체계는 그대로 살아남았다. 국가신도에 대한 연합군의 어수룩한 대응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대목이다. 전후 일본제국헌법이 폐기되고 일본국헌법이 등장하면서 신정(神政) 통치는 사라졌지만 여전히 그 흔적을 노출하고 있는 곳이 곧 야스쿠니다.
과거 일본제국은 태평양전쟁을 성전(聖戰)이라고 불렀으며 많은 이들이 전쟁터에서 ‘천황폐하 만세’를 부르며 죽어갔다. 그렇게 죽은 이들을 천황을 위해 목숨을 바쳤다며 신으로 떠받드는 곳이 야스쿠니다. 그런데도 야스쿠니 신앙을 주장하는 이들은 흔히 ‘국가를 위해 죽은 이들을 추모하는 게 뭐가 문제냐’고 되묻는다.
하지만 문제는 그들이 말하는 ‘국가’다. 현재의 국가가 아니라 전전의 국가를 가리키고 있기 때문이다. 전후 일본은 천황이 곧 국가(국체·國體)라고 주장했던 전전의 일본제국과는 판이한 정체를 갖췄다. 전전의 신정체제를 추앙하는 현장이 바로 야스쿠니였는데 지금 그 자리에서 같은 목적으로 참배를 한다면 그것은 민주주의를 폐기하고 침략의 역사를 적극적으로 옹호하는 것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
13일자 아사히신문은 ‘야스쿠니 참배-정교분리를 잊지 말라’는 사설에서 “정치는 종교와 분리돼야 하며 그것은 현대 민주주의의 철칙”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사설은 “일본의 경우 그 교훈은 지난 전쟁과 파멸에 이르는 과정, 군국주의와 신도가 밀착했던 고통스러웠던 경험을 바탕 삼아 (전후 일본의) 평화국가의 원칙이 됐다”고 지적했다.
아베 신조 총리나 집권 자민당이 기를 쓰고 헌법을 개정하려는 또 다른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는 야스쿠니 참배가 현 헌법에 위배되고 있음을 누구보다 그들이 잘 알고 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일본국헌법은 신교(信敎)의 자유를 보장하는 한편 정치와 종교의 분리를 극구 강조한다. 그들은 헌법 개정을 통해 정교분리의 예외조항을 마련해 야스쿠니 신앙을 진작시키려고 하는 것이다.
전전 일본이 신도를 국가신도로 개창하고 그 틀을 군국주의의 정신적 지주로 삼았던 결과가 어떠했는지 그들은 모른다는 것일까. 300여만명의 일본인과 2000만명이 넘는 아시아인을 죽음으로 내몰았던 전쟁과 파멸적인 원폭 참사마저도 잊었다는 것인지 도무지 이해하기 어렵다. ‘평화롭게 다스린다’는 뜻의 야스쿠니(靖國)가 본래의 의미와 달리 자국은 물론 주변국에까지 고통을 가중시키고 있다.
조용래 논설위원 choyr@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