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이명희] 절전 타령

입력 2013-08-13 17:37

우리나라에 처음 전기가 들어온 것은 고종황제 때인 1887년 3월 6일 경복궁 내 건청궁이다. 에디슨이 백열전등을 발명한 지 8년 만이다. 향원정 연못에서 물을 얻어 석탄을 연료로 발전기를 돌렸는데 기계 돌아가는 소리가 천둥 치는 소리처럼 우렁찼다고 한다. 연못 물을 먹고 건청궁 처마 밑을 벌겋게 달군다고 해서 ‘물불’, 발전기 가동으로 연못 수온이 상승해 물고기가 떼죽음당하자 물고기를 끓인다는 뜻의 ‘증어(蒸魚)’, 성능이 완전하지 못해 자주 불이 꺼지고 비용도 많이 들어가는 게 건달 같다고 해서 ‘건달불’로 불리기도 했다.

발전소가 많지 않았던 우리나라에서 늘 전기는 귀했다. ‘한 사람의 절전은 백 명의 광명’이라는 절전 표어까지 등장했을 정도. 1947년 11월 헬믹 미 군정장관대리는 “남조선에는 전력사용량이 제한돼 있는데 이를 초과하면 전기 없는 세상으로 가게 될 것”이라며 “과대한 전력을 사용하는 것은 남조선 수많은 애국동포들로 하여금 귀중한 전기 공급을 받지 못하게 하는 범죄를 행하는 것으로 각별히 주의하라”는 섬뜩한 성명서를 발표하기도 했다. 이듬해에는 서울시 구, 동, 통, 반별로 절전위원회를 구성해 각 가정에 지정된 휴즈를 나눠주고 밀봉하게 한 뒤 절전을 어기면 송전 중단은 물론 과태료 부과, 형사처벌까지 하겠다는 엄포를 놓았다. 가정마다 전기사용 실태를 조사하고 과다 사용한 가정은 한 달간 전기를 끊는 것은 물론 방송과 신문에 명단까지 공표했다.

1960년대에는 전력난 때문에 저녁밥을 먹고 있는 중에 전기가 나가는 일이 잦았다. 당시 정부는 ‘신정부의 전력대책’이란 제목의 광고문을 내고 “야간 가정 점등에 지장이 없도록 시책 중”이라며 “능력 있는 자는 자가발전(自家發電)에 힘쓰도록 하고 일반시민들은 전열기구 사용을 자진하여 중지함으로써 절전에 협력해 달라”고 호소했다. 한 집 당 한 등 끄기운동, 일찍 잠자리 들기운동 등이 벌어졌다.

서울시는 절전 불량업소 단속을 벌여 과태료 부과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국세청에 명단을 통보하기도 했다. 1990년대 초반에는 동력자원부와 한국전력이 ‘부채를 부치자’는 캠페인을 전개하면서 수천만개의 부채를 만들어 전국에 배포했다.

이번 주가 전력난의 최대 고비라고 한다. 우리나라에 전기가 들어온 지 120여년이 흘렀고, 발전소 건립을 본격화한 지도 수십 년이 지났는데 아직도 ‘블랙아웃’으로 겁 주면서 정부는 국민들에게 절전 타령만 하고 있으니 한심하기 짝이 없다.

이명희 논설위원 mhee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