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 장돌뱅이들, 소외 지역 찾아 ‘소통의 場’ 펼친다

입력 2013-08-12 18:48


여러 장터를 돌아다니며 물건을 파는 ‘장돌뱅이’. 지금은 추억 속으로 사라진 장돌뱅이들은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고 타지 소식을 전하는 메신저 역할도 했다. 20대 청년들은 잊혀진 과거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사회적기업 ‘방물단’을 열었다. ‘장터’ 하면 떠오르는 예스러운 느낌은 지우고 젊은 감각의 물품을 더해 주민들이 함께 어울리는 ‘축제’의 장이 되도록 했다.

‘방물단’ 이름은 봇짐을 짊어지고 장터를 돌아다녔던 ‘방물장수’에서 따왔다. 이름처럼 이들은 장터를 기반으로 활동한다. 지난해 5월부터 시작된 이들의 ‘장터 프로젝트’는 주민들에게도 알려져 장터 스케줄을 따라 참가하는 ‘팬’도 생겼다.

매월 마지막 주 금요일 저녁이 되면 서울 영등포동 하자센터 앞 공터에 장이 들어선다. 해가 저물기 시작하고, 치열했던 일상을 마무리하고 나면 나타나는 평온한 ‘달’을 본떠 ‘달 시장’이라고 이름 지었다. 지난달 열린 장터에는 인근 아파트 주민들과 수공예 작가들의 작품을 함께 전시해 팔기도 했다. 방물단 대표 인재명(27)씨는 12일 “이제는 마을 어르신들이 직접 만든 뜨개 작품 등을 들고 나와 장터에 내놓는다”며 “마을 주민들과 지역 작가들이 장터라는 ‘축제’에서 함께 교감하는 시간을 갖는다”고 말했다.

지난 6월에는 길음3동 임대아파트에서 장터를 열기도 했다. 이곳 주민들이 꾸려가는 ‘어린이 도서관’을 돕기 위한 기부 마켓이었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기증받은 책을 다시 장터에서 되팔아 남는 수익금을 이곳 주민들에게 전달했다.

‘장터’라는 아날로그적 가치를 중시하지만 20대 청년답게 장터 운영은 철저히 ‘신세대’ 방식으로 이뤄진다. 서로 이름이나 직함으로 부르는 대신 별명을 사용한다. 인 대표는 ‘봄봄(봄을바라봄)’, 이호진(26)씨는 ‘월리’로 불린다. 이씨는 “형·누나라는 호칭 속에서도 서열이 존재하고, 선입견이 생겨 별명으로 부른다”며 “우리가 장터를 기획하면서 중요하게 여긴 인간관계의 본질은 사람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들은 대학가나 번화가 등 성공할 만한 곳에서 장터를 열지 않는다. 오히려 소외된 이웃, 소외된 공간을 찾아다니며 장터를 기획하고, 참여한 이들에게 따스함을 선물한다. 이 때문에 장터를 기획해도 수익금으로 얻는 것은 고작 인건비 100만원뿐이다. 그러나 높은 연봉을 받고 대기업에 다니는 또래들이 부럽지 않다고 했다. 인씨는 “소외된 이웃에 대한 고민은 우리 시대 청년들의 책임감이라고 생각한다”며 “사람과 사람을 잇는 장터들이 전국에 수천 개로 늘어나 장터를 더 이상 기획하지 않아도 되는 날이 오는 것이 꿈”이라고 말했다.

글·사진=김유나 기자 spri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