天地가 통했다… 번개치던 날 ‘번개 볼트’ 우승

입력 2013-08-12 18:10


하늘에는 ‘번개’가 번쩍거렸고 땅엔 ‘볼트’가 빗속을 뚫고 번개 질주에 나섰다. 그리고 ‘단거리 황제’ 우사인 볼트(27·자메이카)는 12일(한국시간) 러시아 모스크바 루즈니키 스타디움에서 열린 제14회 세계육상선수권대회 남자 100m 결승에서 대역전극을 펼치며 9초77의 기록으로 가장 먼저 결승선을 밟았다. 자신의 시즌 최고 기록이자 올해 통틀어 두 번째로 좋은 기록이다. ‘전설은 계속된다’는 한 편의 살아있는 스포츠 드라마였다.

◇‘대구의 악몽’ 4년 만에 탈출=2009년 베를린 세계선수권대회에서 9초58의 세계기록으로 첫 금메달을 목에 건 볼트는 2011년 대구 대회에서 부정 출발로 충격적인 실격을 당한 뒤 4년 만에 명예회복에 성공했다. 세계선수권대회 통산 6개째 금메달을 따낸 볼트는 역대 최다관왕인 미국의 ‘육상 전설’ 칼 루이스(8개)에 두 개 차이로 다가섰다. 남은 200m와 400m 계주에서도 우승해 2009년 베를린에 이어 두 번째 단거리 3관왕에 오른다면 루이스와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된다. 이날 볼트의 기록은 세계기록에는 못 미쳤지만 악천후 상황임을 고려하면 상당한 수준의 기록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세상에 이루지 못할 일은 없다=이날 결승전을 앞두고 볼트의 우승에 먹구름이 끼는 듯했다. 양 다리에 통증이 몰려오기 시작한 것. 하지만 그는 굵은 빗줄기에도 아랑곳 하지 않았다. 출전 선수 중 두 번째로 늦은 반응시간 0.163초로 스타팅 블록을 박차고 나선 볼트는 탁월한 가속도로 경쟁자를 제친 뒤 레이스 중반에 접어들면서는 저스틴 게이틀린(미국)과 함께 선두로 치고 올라갔다. 볼트는 약 80m 지점이 가까워지자 게이틀린마저 제치고 단독 선두로 올라선 뒤 추월을 허용하지 않고 1위로 골인했다. 특유의 ‘볼트 세리머니’로 대미를 장식한 볼트는 “비는 비일 뿐, 빗속에서 달린 일이 없는 것도 아니고 더 추운 곳에서도 뛰어봤다”고 미소를 잃지 않았다. 볼트는 또 “나는 육상을 위해 사용해야 할 재능이 있기에 언제나 육상을 선택해 왔다”면서 “사람들에게 어떤 것이든 가능하다는 영감을 주고 싶었다”고 사력을 다해 달린 이유를 설명했다.

◇독주는 계속된다=볼트의 독주는 이미 예고된 일이었다. 그동안 볼트의 뒤를 쫓던 2인자들이 약속이라도 한 듯 사라졌기 때문이다. 2007년 오사카 세계대회 3관왕의 영광을 재현하겠다고 벼르던 타이슨 게이(미국)는 약물을 복용한 사실이 드러나 대회에 출전하지도 못했다. 아사파 파월(자메이카) 역시 같은 시기에 도핑테스트에서 적발돼 낙마했다. 2011년 대구 세계대회 금메달, 2012년 런던올림픽 은메달을 차지해 ‘포스트 볼트’로 떠올랐던 요한 블레이크(자메이카)는 부상을 입는 바람에 대표팀에서 제외됐다. 남은 상대는 네스타 카터(자메이카)와 게이틀린 두 명뿐이었다. 올해 6월 볼트와의 맞대결에서 승리한 적이 있는 게이틀린은 이날 자신의 시즌 최고 기록인 9초85를 기록했지만 볼트를 따라잡지는 못했다.

윤중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