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제개편안 재검토]박 대통령, 왜 U턴했나…월급쟁이 분노에 당혹
입력 2013-08-13 02:59 수정 2013-08-13 08:36
박근혜 대통령이 12일 ‘조세저항’ 움직임에 신속한 반응을 보인 배경에는 여권 전반에 뿌리 깊게 각인된 ‘촛불집회 트라우마’가 깔려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정부의 지난 8일 세제 개편안 발표 후 불과 나흘 만이다. 이번 사태가 정권 최대 위기로까지 번질 수 있다는 위기감이 반영됐다는 의미다.
2008년 당시 유력한 차기 대권주자였던 박 대통령은 같은 당 이명박 대통령이 미국산 쇠고기에 반대하며 들불처럼 번진 촛불집회로 집권 초부터 국정운영의 동력을 잃어가는 모습을 생생하게 지켜봤다. 민심에 귀 기울이지 않은 정부 정책은 강력한 국민적 저항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교훈을 여권에 남긴 것이다.
박 대통령은 ‘화끈한 유턴’을 단행했다. 스스로의 전력에 비춰봐서도 상당히 이례적으로 평가된다. 의원 시절부터 박 대통령은 신속한 결단보다 신중하게 숙고하는 모습을 주로 보였다. 한 번 결정된 일을 되돌리는 것 자체에 인색했다. 이 때문에 박 대통령에 대해 긴급한 현안에 대한 순발력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오기도 했다.
박 대통령은 취임 6개월(8월 25일)을 앞두고 후반기 국정운영에 강력한 민생·경제 드라이브를 걸던 상황이었다. 새로 출범한 청와대 비서진 2기도 올해 전반기에 터졌던 정부조직 개편 논란, 인사 파동, 윤창중 전 청와대 대변인의 성추행 의혹 사건 등을 극복하고 국정운영을 준비하는 단계를 지나 후반기에는 의욕을 가지고 성과를 내려던 태세였다.
하지만 내심 야당이 주도하는 정쟁의 부산물 정도로 생각했던 촛불집회가 심상치 않은 조짐을 보이기 시작했다. 참가자는 시간이 갈수록 늘어 이달 들어 1만6000명(주최 측 6만명)까지 불어났다. 특히 세제 개편안에 반대하는 목소리는 철저하게 민생 이슈라는 점에서 큰 부담으로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이번 세제 개편안으로 울분을 터뜨리고 있는 봉급생활자들은 정치적 의사표출 욕구가 강하고 정책에 민감한 서민·중산층 직장인들이다. 박 대통령으로서는 각종 국정과제 달성을 위해 이들의 협조와 이해가 절실한 셈이다. 박 대통령도 이날 ‘서민·중산층의 지갑을 얇게 한 부분’을 문제삼았다.
정부에 대한 반발을 장기간 방치할 경우 저항심리가 점차 확산되면서 정국 주도권을 야당에 넘겨주는 것은 물론 박 대통령이 실현하려던 ‘국민행복’ 자체가 비전을 잃을 수 있다는 우려까지 조심스레 나왔다. 향후 크고 작은 정부의 잘못마다 촛불집회에 세(勢)를 보태면서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벌써부터 ‘박 대통령 지지율 하락→10월 재보선 여당 패배’라는 시나리오까지 거론됐다.
박 대통령은 일단 조기 대응으로 정권 최대 위기 상황에서는 한숨 돌린 모습이다. 하지만 상황은 여전히 불안정하고, 정부에 반발했던 ‘불씨’는 언제든 다시 살아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정부가 향후 내놓을 세제 개편 수정안이 1차 난관으로 지목된다. 원안에 비해 상대적으로 고소득자에게 세 부담이 전가될 경우 또 다른 반발까지 예상할 수 있다.유성열 기자 nukuv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