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세제개편 전면 재검토하게 된 까닭 되새겨라
입력 2013-08-12 17:27 수정 2013-08-12 22:43
부자감세 기조부터 바꾸고 복지 증세 얼버무리지 말아야
세금폭탄 논란을 낳은 ‘2013년 세제개편안’이 대폭 수정될 처지다. 박근혜 대통령은 12일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에서 “서민과 중산층의 가벼운 지갑을 다시 얇게 하는 것은 정부가 추진하는 서민을 위한 경제정책 방향과 어긋나는 것”이라며 원점에서 재검토할 것을 지시했다. 당정이 합의한 세제개편안이 주먹구구식이었음을 정부가 자인한 셈이다. 개편안에 문제점이 있다는 지적을 정부가 바로 받아들여 재검토 필요성을 제기한 것은 그나마 다행이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정부·여당은 문제의 본질을 정확하게 인식할 필요가 있다. 사태의 핵심은 박근혜정부의 공약가계부 추진과 이를 감당할 수 있는 세수 확보 사이의 미스매치에서 비롯됐다. 게다가 박 대통령은 기회 있을 때마다 ‘증세 없는 복지재정 확충’을 주장한 탓에 세정 당국은 서로 상충된 두 전제를 만족시키는 데만 초점을 맞췄던 것 같다.
세율 인상을 통한 증세는 없다고 했지만 개편안에서는 연봉 3450만원 이상 근로소득자들의 세 부담이 늘어났다. 물론 세율 인상은 없었고 세정당국도 이 대목에서 목소리를 높였다. 하지만 근로자 입장에서 보면 세 부담이 실질적으로 늘어난다는 점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정부가 ‘말로만 증세 없다’라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현실인 것이다.
정부의 중산층 개념이 들쭉날쭉한 점도 신뢰감을 떨어뜨렸다. 이명박정부 때는 감세를 강조하면서 중산층 상한기준을 8800만원 미만(과세표준액 기준)으로 높였었는데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기준으로 따져보면 5500만원 미만이다. 세정당국은 ‘중산층의 세 부담이 줄고 고소득층은 늘었다’고 했는데 그렇다면 3450만원 이상은 이미 고소득층에 속한다. 대체 우리나라의 서민·중산층은 누구인가.
정부는 당초 세율 인상 없이 비과세 감면 축소, 탈세 척결, 금융자본소득세 강화 등으로 공약가계부를 충분히 꾸려갈 수 있다고 했지만 적어도 세제상으로는 서민·중산층의 부담을 통해 재원조달을 꾀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재원 조달이 그토록 관건이었다면 이명박정부 때 굳혀졌던 부자감세의 틀부터 바꾸고 나서 근로소득자들에 대한 세 부담 협력을 요청했어야 옳았다. 많은 국민들이 이번 개편안에 대해 세 부담의 형평성 차원에서 납득하기 어렵다고 불만을 피력했던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우리는 그동안 증세 없는 복지재정 확충이 과연 가능하겠느냐는 의문을 여러 차례 제기했었다. 복지확대 필요성엔 조금도 이론의 여지가 없지만 추가 재정확충은 지극히 현실적인 문제다. 우리의 입장은 공약 추진에 수위조절을 하든지 그게 아니라면 세수 확보를 위한 증세가 불가피하리라는 것이었다. 물론 후자의 경우 정부는 국민을 향해 솔직하고 명확하게 증세의 필요성을 설득하고 세 부담의 우선순위를 분명하게 제시해야 한다고 본다.
사실 우리나라의 낮은 복지 수준의 원인이 낮은 수준의 조세부담률, 사회부담률에 있음은 더 이상 숨길 수 없는 불편한 진실이
아닌가. 중장기 세제도 이 문제를 염두에 두고 다시 짜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