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돋을새김-성기철] 北에 손길을 내밀 때다

입력 2013-08-12 17:27


과거 각종 남북회담 때 합의문을 생산하기 위해서는 남측의 양보가 거의 필수였다. 북측은 지연작전을 펴면서 기존 입장을 고수하기 일쑤였고, 애가 탄 남측이 양보안을 내놓아야만 절충점을 찾을 수 있었다.

노태우정부 시절 여덟 번의 남북 고위급회담이 대표적인 케이스다. 남북기본합의서라는 역사적 성과물은 남측의 끝없는 양보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회담이 열리면 첫날 양측 총리가 기조발언을 통해 새로운 제안을 했고, 실무자들은 이를 토대로 밀고 당기는 힘겨루기를 해야 했다. 이 과정에서 회담 돌파구 마련을 위한 양보는 십중팔구 남측 몫이었다. 남북 화해협력시대의 ‘남한 형님론’이 작동할 때여서 가능했을 것이다.

김대중·노무현 정부 때 열린 남북 장관급회담과 남북 장성급회담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2000년 6·15 정상선언과 2007년 10·4 정상선언 역시 그런 분위기에서 탄생했다. 김대중 대통령이 낮은 단계의 연방제 통일 방안에 합의해 주고, 노무현 대통령이 서해 평화수역 지정에 동의해 줬기에 선언문 채택이 가능했을 게다.

내일 개성회담, 남북관계 기로

보수 성향의 이명박정부는 이런 남북회담 관행에 제동을 걸었다. 남측은 5년 내내 원칙론을 내세워 북한을 길들이려 했고, 북측은 시종 뻣뻣하게 맞섰다. 결과는 교류협력 올스톱이었다. 박근혜정부는 보수정권을 이어받았음에도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 정책을 제시하며 남북 간 화해협력을 시도했다. 하지만 정권 초기 뜻밖의 남북 간 군사적 긴장으로 개성공단이 문을 닫게 됐다. 양측은 공단을 원상회복시키기 위해 6차례 회담을 가졌으나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박근혜정부가 이명박정부의 대북관계를 극복하느냐, 답습하느냐의 기로에 섰다고 볼 수 있다.

14일로 예정된 ‘개성공단 7차 회담’이 초미의 관심사가 된 이유다. 우리 측은 6차 회담이 결렬된 뒤 공단 폐쇄를 의미하는 중대조치 가능성을 내비치며 ‘마지막’ 회담을 제의했다. 다행히 북측은 회담 재개를 받아들였다. 북측은 동시에 개성공단 잠정중단 조치 해제 및 기업의 출입 전면 허용, 북측 근로자의 정상출근 보장, 남측 인원의 신변안전 담보 및 재산 보호를 약속했다.

우리 정부가 북측 태도를 긍정적으로 평가한 것은 당연지사. 박근혜정부는 개성공단 문제에 관한한 북한을 길들일 만큼 들였다. 1차 회담 성사 때부터 북한더러 고개를 숙이게 했으며, 7차 회담의 경우 남측이 최후통첩식 제의를 했음에도 북측은 이를 순순히 받아들였다. 북측으로선 수모에 가까운 것이며, 남측이 완전히 주도권을 잡은 것이다.

특히 회담의 최대 쟁점인 재발방지 대책과 관련해 북측은 상당한 양보 의사를 밝혔다. 7차 회담을 수용하면서 “북과 남은 공업지구 중단 사태가 재발되지 않도록 하며 어떤 경우에도 정세의 영향을 받음이 없이 공업지구의 정상 운영을 보장하도록 한다”고 언급했다. 재발방지의 주체로 남과 북이 모두 들어간 것은 기존 입장과 다름이 없지만 북측이 개성공단 가동 중단의 빌미로 삼은 우리 측의 ‘정치·군사적 행위’에 대한 언급은 빠졌다. 이는 북측이 꼬리를 내린 것이나 다름없다.

북 진정성 확인 땐 합의점 찾길

7차 회담에서 북측 태도의 진정성이 확인될 경우 우리가 북의 손을 잡아주는 게 옳다고 본다. 얻을 만큼 얻어냈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개성공단 파탄의 단초가 된 한반도 군사적 긴장을 북측이 먼저 조성한 게 사실이지만 이 부분에 대해 사과를 받아내기란 무리 아닐까 싶다. 남북이 나아가야 할 길은 멀고도 험난하다. 금강산 관광 재개, 이산가족 상봉을 위해 머리를 맞대야 한다. 북핵이라는 중차대한 현안도 하루빨리 협상 테이블에 올려야 한다. 개성공단 가동 재개는 그래서 중요하고도 시급하다.

성기철 편집국 부국장 kcs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