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델한인교회 손인식 목사 “목회란 예수님 산상수훈 실험하는 과정”

입력 2013-08-12 17:01


올 연말 23년 정든 교회 떠나는 美 캘리포니아 어바인 베델한인교회 손인식 목사

2004년쯤이었다. 그의 마음을 묵직하게 짓누르고 있는 정체가 무엇인지 궁금했다. 미국에 들어온 지 30년이 넘었고, 그중 절반 가까이 한인교회를 섬기는 데 헌신했다. 180명으로 시작한 교회는 출석 교인만 수천 명에 달하는 미국의 대표적인 한인교회로 성장했다. 주위에서는 성공한 목회자라고 추켜세우고….

그런데 이게 전부일까. 마음 한켠에서는 또 다른 음성이 자꾸 들렸다. ‘저기 북한 땅에서는 네 동족이 굶고 갇히고 두들겨 맞아가면서 죽어가고 있단다. 너는 네 목회가 전부라고 생각하느냐. 과연 그게 끝이라고 생각하느냐. 그건 위선이야!’ 당시 50대 중반이었던 미국 캘리포니아 어바인의 베델한인교회 손인식(65) 담임목사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로부터 9년이 지난 2013년 8월, 손 목사는 올 연말 23년간 정든 교회를 떠난다. 목회자 정년(70세)을 5년 앞당긴 것이다. 지난 6월에는 미국 현지의 세리토스장로교회 담임인 김한요(52) 목사를 후임으로 확정했다. 그보다 앞서 지난 연말 제직회원들 앞에서 그는 이런 약속을 했다.

“은퇴를 하게 되면 교회 목회와 교인 경조사·대소사에 일절 관여하지 않겠습니다. 교회 안에 사무실도 두지 않겠습니다. 후임자 청빙에 관여하지 않겠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 은퇴 후 북한 선교에 전념하기 위한 선교사로 교회의 파송을 받겠노라고 약속했다. 하나님 앞에서 ‘위선자’가 되지 않겠다는 9년 전 다짐을 못 박았다.

선교 업무를 위해 일시 귀국한 손 목사를 지난 7일 국민일보 기독교연구소에서 만났다. 은퇴를 앞둔 소감을 묻는 질문이 무색해졌다. “은퇴(retire)는 없습니다. ‘타이어를 갈아끼우는 것(changing tire)’에 불과하니까요. 하하하.”

내년이면 그가 대표를 맡고 있는 ‘북한자유를 위한 한인교회연합(KCC)’이 10주년을 맞는다. 그동안 손 목사는 목회를 하면서 동시에 KCC를 중심으로 ‘북한인권법’ 제정 등 북한자유·인권·통일 운동을 활발히 펼쳤다. KCC에는 현재 미국을 비롯한 전 세계에서 2400여 교회가 동참하고 있다.

워싱턴DC에서 지난해에 이어 올해 두 번째 열린 북한 자유를 위한 ‘통곡기도회’에는 1200여명의 그리스도인이 모여 기도의 불꽃을 모았다. 앞서 지난해에는 미국 중심의 KCC 활동을 전 세계로 확대하기 위한 ‘UTD(Until The Day Mission·그날까지선교연합)’를 설립, 본격적인 조직화 작업이 이뤄지고 있다. 그 중심에서 진두지휘하는 손 목사는 이미 ‘제2의 사역’을 시작한 듯했다.

“가만히 생각하면 36년간 이어온 이민목회 속에서 맺어진 수많은 네트워크가 지금 펼치고 있는 북한자유운동에 얼마나 큰 힘이 되고 있는지 몰라요.” 현재 KCC에는 미국에서만 5000여교회가 참여하고 있고, 그 가운데 1400교회가 회원 교회다. 베델한인교회 담임의 직함을 달고 일하면서 얻은 열매들이다.

성도 5000여명을 이끌며 이민 목회의 성공 아이콘으로 그려지고 있는 그에게 있어서 목회란 과연 무엇일까.

잠시 뜸을 들였다. “한마디로 예수님의 ‘산상수훈’을 실험하는 과정이라고 할까요. 이 산상수훈을 실험하는 교회가 바로 지상의 교회라고 생각해요.”

산상수훈(마태복음 5∼7장)은 예수님이 사역 초기에 갈릴리 산에서 제자들과 군중에게 전한 산상 설교다. 흔히 ‘성서 중의 성서’로 일컬어지는데, 오늘날까지도 많은 그리스도인들의 윤리적 지침이 되고 있다. 이웃사랑과 사회적 의무, 자선행위, 기도, 금식 등 예수의 가르침이 담긴 ‘팔복’ 설교가 대표적이다.

“수많은 목회자들이 지금 이 순간에도 ‘산상수훈’의 말씀을 순종하며 실천하려고 발버둥치고 있지요. 하지만 목회 가운데에서도 인간이기에 겪을 수밖에 없는 고통을 만나기도 합니다. 그때 주님께서는 이렇게 위로하고 격려하십니다.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마 5:12).’”

어느덧 이민 목회자들 사이에서도 대선배로 분류되는 손 목사는 이민 교회가 처한 위기에 안타까운 마음을 내비쳤다.

“40년 전만 하더라도 이곳 정부를 비롯해 각종 기관들은 교회에 대해 우호적이었어요. 하지만 지금은 더 이상 우호적이라고 볼 수 없습니다. 그리고 인터넷 시대가 되면서 각종 정보에 노출된 군중들은 더 이상 말씀 앞에 순종하려 하지 않아요.”

그는 이민교회의 가장 큰 위기로 꼽은 문제는 “승복을 거부하는 문화”라고 했다.

지금 적지 않은 미국의 한인교회에서는 각종 소송이 난무하고 있다고 그는 전했다. 교단 선거와 교회 내부 문제로 사회법으로 송사를 벌이고 있는 한국교회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다. 모두 승복을 거부한 탓이라고 그는 진단했다.

수렁에 빠진 이민교회를 구하는 묘책은 없을까.

“목회자가 설교 강단 밑으로, 즉 회중 안으로 들어가는 설교가 중요합니다. 다시 말해 목회자는 ‘걸어다니는 메시지’가 되어야 해요. 목회자가 본이 되고 덕을 세우는 데 힘써야 해요. 이중적인 삶이 되어선 안 됩니다. 목회자의 영적 도덕성이 관건입니다. 여기서 결판이 납니다. 교회가 커지면 커질수록 스멀스멀 밀려나오는 교만함을 경계해야 해요. 저는 은퇴할 때쯤 되니까 예수님의 ‘산상수훈’이 더 절실해집니다.”

박재찬 기자 jeep@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