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형 칼럼] 왕업(王業)

입력 2013-08-12 17:01


지금 박근혜 대통령이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혼돈 가운데 질서를 세우는 일이다. 2013년 대한민국은 어지럽다. 무언가가 정리되어 있지 않은 상태다. 한반도 상황은 실타래처럼 얽혀 도무지 풀릴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정치 실종, 잿빛 경제, 소망 상실의 상태. 치솟는 전셋값은 서민들의 삶을 옥죄고 있다. 아픈 청춘들과 아플 수도 없는 중년, 우울한 노년들이 그득한 대한민국이다. 혼란스럽다.

혼란을 종식시키고 질서를 유지하는 일, 그것이 박 대통령에게 부여된 소명이다. 그 일은 왕업(王業·kingwork)이다. 왕업은 하늘이 맡기고, 하늘이 정해 준 일. 보내신 자가 하라고 명하신 일이다. 기독교적으로 말하자면 하나님께 기름부음을 받은 사람이 하는 일이 바로 왕업이다. 다윗은 본래 양을 치는 목동이었다. 목동은 그의 직업이었고 정체성이었다. 그러나 하나님의 손에 붙들린 이후 일개 목자였던 다윗의 일은 왕업, 즉 하나님이 맡기시고 하나님이 정해 주신 천상의 일이 되었다. 모세에게 하나님이 물으셨다. “네 손에 있는 것이 무엇이냐?” “지팡이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함께해주셨을 때 그 지팡이는 더 이상 ‘모세의 지팡이’가 아니었다. ‘하나님의 지팡이’가 되었다. 그 지팡이가 홍해를 갈랐다. 모세의 일은 왕업이 되었다.

‘메시지’의 저자인 기독 영성가 유진 피터슨은 왕업의 기초는 혼돈 가운데 질서를 세우는 일이라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다윗이 왕으로 했던 첫 번째 일은 음악 연주를 통해 혼돈에 빠진 사울의 정신과 감정에 다시 하나님의 질서를 세우려고 시도하는 것이었다. 피터슨은 좋은 일을 맡았다는 것이 곧 좋은 일을 하게 된다는 뜻은 아니라고 언급한다. 똑같은 일을 수행하는데 사울은 실패했고 다윗이 성공한 것을 예로 들었다.

대한민국에 왕업을 행했던 수많은 군주와 대통령들이 있었다. 똑같은 일들을 수행했지만 성공한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으로 나뉜다. 엉망진창인 상태에서 왕업을 맡아 질서를 세운 지도자도 있지만, 그 반대의 경우도 부지기수다. 대통령이란 자리에 앉은 자체가 왕업을 성공적으로 수행하게 하는 충분조건이 되지 못한다. 피터슨은 모든 진정한 일에는 섬김과 통치라는 두 요소가 하나로 결합되어 있다고 말했다. 왕업을 맡은 자는 일의 내용인 통치만 생각해선 안된다. 섬김이라는 그 일을 하는 방식이 더욱 중요하다. 중산층을 살리겠다고 약속한 박근혜정부가 공약과 달리 중산층을 옥죄는 정책을 쏟아냈을 때 사람들은 이 정부의 진정한 섬김 의식에 물음표를 던질 수밖에 없다. 통치는 있지만 섬김은 없다.

박 대통령은 지금 왕업을 수행하고 있다. 먼저 그 왕업이 하늘로부터 왔음을 인식해야 한다. 그 자리로 보내신 자의 뜻을 구해야 한다. 다음으로 통치와 섬김이라는 두 요소를 늘 생각해야 한다. 통치와 섬김을 씨줄과 날줄로 해서 혼돈 가운데 질서를 세우는 일을 해야 한다. 그것이 왕업의식을 지닌 대통령의 소명이다.

대통령직만이 왕업이 아니다. 우리가 하는 모든 일에는 왕업으로서의 위엄이 깃들어 있다. 우리의 일 속에서 하나님의 주권이 드러날 때 우리는 왕업을 행하는 것이다. 지금 대한민국에는 대통령에서부터 거리의 청소부에 이르기까지 거룩한 소명으로서의 일의 회복이 시급하다. 왕업의식을 지닌 자들은 좋은 일, 잘할 수 있는 일을 하지 않는다. 오직 보내신 자가 원하는 일을, 그분이 원하는 방법대로 한다. 그럼으로써 결국 혼돈 가운데 질서를 가져온다. 그때 샬롬이 임한다.

이태형 국민일보 기독교연구소 소장 th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