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으로의 여행] 마르셀 라이히라니츠키 ‘작가의 얼굴’

입력 2013-08-11 18:43


올해 93세의 마르셀 라이히라니츠키. 독일인 98%가 그의 이름을 안다는 설문 조사 결과가 있다고 하니, 그는 독일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문학평론가이자 스타 평론가임에 틀림없다.

폴란드인 아버지와 독일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그는 1929년 폴란드 브워츠와베크를 떠나 독일 베를린에서 성장했으나 1938년 폴란드로 강제 추방된 후 아내와 함께 수용소를 탈출해 1958년 서독으로 넘어온다. 당시 독일 작가 귄터 그라스가 그에게 “당신은 폴란드인입니까, 독일인입니까”라고 묻자 그는 이렇게 대답한다.

“나는 반편의 폴란드인, 반편의 독일인, 그리고 온전한 유대인입니다.” 그의 이 같은 유대인 정체성은 ‘작가의 얼굴’(문학동네·사진)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그가 논한 40여명의 작가 중에는 괴테와 하이네, 토마스 만과 브레히트 등 독일을 대표하는 작가들도 끼어있지만 대부분은 유대인이다. 이들을 대하는 그의 태도는 한층 애틋한데, 종종 스스로에 대해 이야기하는 느낌을 줄 정도다.

하지만 문학평론가로서 그의 잣대는 지나칠 정도로 명료한 나머지 도대체 중립이라는 덕목과는 거리가 멀다. 예컨대 그는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귄터 그라스에 관해 쓰면서도 주눅은커녕 꼿꼿하고 당당하다. “나는 겁날 게 하나도 없구려. 사람들이 우리, 그러니까 당신과 나를 갖가지 흠과 부덕과 악덕을 들먹이며 비난해왔고 지금도 여전히 그러지만, 그래도 아직 ‘부패한 결탁’ 얘기는 나오지 않았으니 말이오.”(318쪽)

그의 비평은 도대체 애매모호하게 포장하는 법도 없이 쉬운 말로 곧장 정곡을 찌른다. 어떤 작품에 대해서건 자신이 판단하는 것을 솔직하고 분명하게 표현함으로써 그는 독일 문단에서 ‘문학의 교황’이라는 난공불락의 명성을 얻는다. 반면 그에게 당한 작가들 사이에선 가장 미움 받는 평론가로 통한다. 1967년 우연한 기회에 브레히트의 초상화를 손에 넣은 그가 이후 미술상점이나 골동품상에게서 수집한 작가의 초상에 눈을 맞추며 떠올린 인상기를 묶은 이 저작은 문학이라는 음식을 어떻게 요리하는지를 보여주는 일종의 레시피이다. 김지선 옮김.

정철훈 문학전문기자 chj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