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골소년’ 후원 이슬기씨 편지 전문
안녕하세요. 저는 부산에 사는 스물네 살 이슬기입니다. 직접 만나 말씀을 드려야 하는데 부족한 솜씨로 글을 적으려고 하니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네요.
제 후원아동의 이름은 바야르마아 투굴두르(애칭 ‘투기’)입니다. 올해 아홉 살, 초등학교 2학년입니다. 저와 처음 인연을 맺은 해에 다섯 살이었는데 시간이 언제 이렇게 지났는지 모르겠습니다.
중학교 때 같은 반에 몽골인 친구가 있었습니다. 한국말도 잘하고 친구도 많은 밝은 친구였지만 항상 몽골 친척집에 두고 온 막내 동생을 그리워하던 모습을 잊을 수 없었습니다. 그 친구 생각이 나서 그랬는지 대학시절 월드비전을 알게 되었을 때부터 제가 굳이 몽골 아이를 후원하겠다며 인연을 맺게 된 아이가 바로 ‘투기’입니다.
사진을 보시면 아시겠지만 투기는 유독 한국아이처럼 생겼습니다. 어디 가서 제 아들이라고 말하면 믿는 사람도 있을 정도로 마음으로는 정말 제 아들처럼 생각했습니다. 언젠가는 꼭 너를 보러 가리라고 막연하게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번에 기적처럼 그 기회가 찾아왔습니다.
배낭여행 설명회에서 받은 비행기 티켓으로 계획 중이던 유럽 여행도 큰 망설임 없이 버리고 선택한 아이와의 만남이었습니다. 사실 결연해 놓고도 그동안 바쁘다는 핑계로 편지도 몇 번 쓰지 못했습니다. 생일마다 기념일마다 챙겨주지 못해 늘 미안한 마음이었습니다. 살뜰히 보살피지 못한 후원자라고 서운하게 생각하진 않을까, 4년 동안 든 정이 없어 나를 반가워하지 않는 것은 아닐까 하는 걱정과 내 ‘아들’을 만난다는 기대를 안고 비행기에 올랐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아이를 만났습니다. 모든 후원자님들이 그러셨겠지만 열 명 정도의 아이들 틈에서도 한번에 찾을 수 있었습니다. 자전거 타는 것을 제일 좋아한다던 아이였기에 개구쟁이일 줄 알았는데, 조용하고 차분한 아이였습니다.
다른 아이들과는 다르게 투기는 얌전하고 의젓했습니다. 기특하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먼저 말도 걸지 않고 잘 웃어주지 않는 투기에게 서운한 마음도 들었습니다. 제가 오기 전에 걱정했던 그런 감정을 아이가 느끼고 있는 것은 아닐까 속상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 작은 아이의 꿈을 듣는 순간, 아이에게 서운함을 느꼈던 제 자신이 부끄러워졌습니다. 수학을 좋아해서 상도 받았다던 투기의 꿈은 수학자도 엔지니어도 아니라 ‘병이 낫는 것’이었습니다. 언제 얼마나 큰 수술을 해야 할지도 모르는 심장병이라고 했습니다.
돈을 벌기 위해 멀리 떠난 엄마를 대신해서 투기를 돌봐주고 계신 할머니도 암에 걸려 걷는 것도 힘에 부친다고 했습니다. 그제야 저와 함께한 시간 내내 눈물을 흘리시던 할머니도, 또래보다 조용하고 어두운 투기도 이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후원자라는 이름을 목에 걸고도 아이의 상태보다 내 상태가 중요했던 제 자신이 참 미워 보였습니다. 제가 투기를 사랑한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 역시 편부 슬하에서 다른 사람들의 도움을 받고 자라왔으니 그 도움을 돌려주어야 한다는 의무감으로 투기를 대했고, 누군가를 돕고 있다는 교만을 내 안의 사랑이라고 착각했었습니다.
모든 아이들이 함께 연에 소원을 적어 연날리기를 하는 시간이 있었습니다. 연을 날리기 위해서는 바람을 따라 힘차게 달려야 하는데, 투기는 그 아름다운 몽골 초원을 제대로 달려보지도 못하고 이내 주저앉고 말았습니다. 작은 몸을 들썩이며 거친 숨을 몰아쉬는 아이를 위해 제가 해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곧 할머니께서 달려와 가슴을 어루만져 주셨지만 열심히 달려 연을 날리는 친구들을 바라보는 투기의 눈빛을 어찌 말로 설명할 수 있을까요. 투기의 건강을 위해 기도하겠다는 말에 자신의 건강을 위해서도 꼭 기도해 달라고 말하는 할머니의 눈물을 어찌 제가 다 헤아릴 수 있을까요.
이번 후원아동과의 만남은 저에게는 마냥 기쁨과 감동만으로 채워진 것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채찍을 맞는 기분으로 후원자로서의 제 자신을 돌아보고, 길지 않은 제 인생을 돌아보는 시간이었습니다. 나눈다는 사실보다 그 안에 담겨 있는 마음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저는 부족해서 그들을 위해 기도밖에는 해줄 수 있는 것이 없습니다. 저의 진심과 아이를 도우려는 모든 손길과 마음을 투기가 알게 되길 간절히 바라봅니다. 그래서 투기의 꿈이 ‘병이 낫는 것’이 아니라, 훌륭한 수학자나 의사가 되어서 도움이 필요한 또 다른 곳으로 나눔을 흘려보내는 일이 되길 기도합니다.
2013년 8월 8일 이슬기 드림
"제가 입양한 9살 몽골소년 좀 도와주세요"
입력 2013-08-11 17:13 수정 2013-08-11 17: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