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들 방황과 반항의 노래… ‘그린데이’라서 더 실감나네

입력 2013-08-11 17:08


일본서 미리 본 뮤지컬 ‘아메리칸 이디엇’

무대에 불이 켜지면, 미디어 아티스트 백남준의 작품을 연상시키는 30여개의 텔레비전 모니터가 눈길을 사로잡는다. 다양한 크기의 모니터는 TV 그 자체로, 때로는 공연을 생중계하는 화면으로, 때로는 노래 제목을 알려주는 자막으로 다양하게 활용된다.

모니터에서 뿜어져 나오는 강렬한 이미지들은 9·11이후 대혼란에 빠진 미국 사회와 방황하는 청춘의 감성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여기에 현란한 조명과 미국의 대표적인 펑크록 밴드 ‘그린데이’의 음악이 어우러지며 무대는 흡사 록 콘서트처럼 달아오른다.

지난 8일 오후 일본 도쿄국제포럼. 아시아에서는 일본과 한국 두 나라에서만 올려지는 뮤지컬 ‘아메리칸 이디엇(American Idiot)’ 브로드웨이 오리지널 팀 공연 현장을 찾았다. 한국에서는 9월 5∼22일 서울 한남동 블루스퀘어에서 공연된다.

이 작품은 2004년 발매된 그린데이의 7집 앨범 ‘아메리칸 이디엇’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이 앨범은 그 자체가 하나의 완결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제작진은 여기에 단 두 곡만을 새로 추가해 뮤지컬로 만들었다. 노래가 나오는 순서도 앨범에 수록된 것과 같다. ‘맘마미아’ 같은 주크박스 뮤지컬과는 다른 지점이다.

연출은 ‘스프링 어웨이크닝’으로 토니상 최우수 연출상을 수상한 마이클 메이어(사진)가 맡았다. 그는 9일 간담회에서 “처음 이 앨범을 듣고 가슴이 터져버릴 것 같았다. 몇 주 동안 하루도 빼놓지 않고 몇 번씩을 들었다. 자신이 원치 않는 정치적 상황에 놓여 힘들어하는 청년의 여정이 느껴졌다. 뮤지컬로 만들면 ‘겁나 멋있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2009년 미국 버클리 레퍼토리 극장에서 초연된 ‘아메리칸 이디엇’은 이듬해 4월 뉴욕 브로드웨이에 입성했고, 그해 토니상 최우수 무대디자인상·최우수 조명디자인상을 받았다. 무대와 조명이 돋보이는 이 작품은 속도감이 대단하다. 거대한 철골 구조물은 순식간에 버스가 되고, 껌껌한 벽은 어느 순간 환한 창이 된다. 90분 내내 잠시도 쉴 틈 없이 빠른 호흡으로 내달려간다. 무대는 전체적으로 록 클럽과 반항아들이 모이는 창고의 느낌이 난다.

작품을 관통하는 주제는 사회와 정치에 대한 통렬한 비판. 앨범 재킷으로 사용된 수류탄 모양의 심장은 이라크 전쟁을 일으킨 부시 행정부에 대한 저항의 메시지다. 이 극의 중심인물은 서른 살이 됐지만 이룬 게 하나도 없는 세 명의 미국 청년 조니, 터니, 윌. 지리멸렬한 현실에서 벗어나 도시에서 새로운 삶을 살고자 하지만 여러 일들이 발목을 잡는다. 윌은 여자친구의 임신으로 아예 떠나지 못하고, 조니는 마약에 손을 대면서 망가진다. 이라크전에 참전한 터니는 전쟁터에서 한쪽 다리를 잃는다. 공연은 이들이 1년간의 방황을 마치고 고향에서 다시 만나 서로를 위로하며 작은 희망을 노래하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작품의 백미는 당연히 세계적인 록그룹의 음악 그 자체다. 3인조 남성 록 밴드인 그린데이는 2010년 그래미상 최우수 록 앨범상을 수상한 실력파 그룹으로 국내에도 팬이 많다. 그린데이의 팬이라면 감격의 눈물을 흘릴 정도로 만족할 만한 공연이 될 듯하다. 그들의 음악을 전혀 모르는 이들도 록 콘서트에 온 기분으로 신나게 즐길 만한 작품이다.

다만 내용이 지나치게 미국적이어서 한국의 청춘들에게 얼마나 호소력 있게 다가갈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90분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많은 이야기를 담다보니 인물들의 급격한 감정변화를 따라가기 버거운 것도 아쉬운 대목이다.

도쿄=한승주 기자 sjha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