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순만 칼럼] 대통령의 호남 부담감(?)
입력 2013-08-11 17:32
"국민대통합이 진정 추구할 가치라면 호남을 심중히 배려하는 것이 마땅하다"
박근혜 대통령은 논란이 되는 사안에 대해 분명하게 선을 잘 긋는 편이다. 국정원의 대선개입 논란에 대해서는 “국정원 스스로 개혁에 박차를 가하고 개혁안을 마련해 주기를 바란다”고 주문해 일명 ‘셀프 개혁’이란 말을 낳았다. 2007년 남북 정상회담 대화록 공개 문제에 대해서는 “정치권에서 국민들에게 NLL 수호 의지를 분명하게 해서 논쟁과 분열을 막아야 한다”고 지적했고, 대화록 실종에 대해서는 “중요한 사초가 증발한 전대미문의 일은 국기를 흔들고 역사를 지우는 것”이라며 강하게 비판했다.
개성공단 남북 실무회담과 관련해서는 “기본적인 것조차 보장 받을 수 없는 상황에서 다시 재가동만 서두르는 것은 안 된다”고, 한·일 정상회담에 대해서는 “역사 문제에 대해 근본적으로 미래 지향적인 분위기가 조성돼야 정상회담을 할 수 있지 않겠느냐”고 분명한 자세를 보였다. 또 ‘귀태(鬼胎)’ 등 민주당 인사들의 발언들을 겨냥해서는 “막말이 우리나라의 품격을 떨어뜨린다”고 지적했다. 한 종합편성채널 앵커가 아시아나 항공기 착륙사고와 관련, ‘희생자 2명이 중국인이어서 다행’이란 취지의 발언으로 물의를 일으킨 데 대해 “그 한마디로 그동안 한국 국민에 대해 (중국인들이) 우호적인 생각을 갖고 있던 게 사라질 판이 됐다”고 개탄했다.
그러나 발언하지 않아 눈길을 끈 사례도 있다. 지난 5월 2개의 종편 채널에서 5·18 광주민주화운동에 대해 “북한의 주도면밀한 계획 하에 벌어진 폭동” “전남도청을 접수한 시민군이 사실은 모두 북한군”이라는 등의 발언을 그대로 내보내 한창 시끄러울 때 박 대통령은 어떤 교통정리도 하지 않았다. 물론 대통령이 모든 사안에 대해 시시비비를 가리는 것은 가능하지도 않고 바람직하지도 않다. 그러나 5월 광주와 같은 문제는 우리 현대사에 너무 큰 상처이기 때문에 민주화운동 세력을 북한의 폭도쯤으로 몰아가는 것은 ‘귀태’나 ‘아시아나기 발언’ 못지않게 심각한 일이다. 그런 발언을 일삼는 사람들은 누구의 희생으로 우리가 오늘의 민주화를 누리고 있는지를 성찰해야 하고, 국민대통합을 주창하는 대통령과 정부는 이런 망발에 대해 지남(指南)을 해줄 필요가 있을 것이다.
그러고 보면 어리석은 소견이겠으나, 박 대통령은 호남에 대해 어느 정도 부담감 같은 것을 갖고 있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들곤 한다. 진정으로 ‘100% 국민대통합’을 소망했고, 이것이 아직도 강렬하게 추구하는 가치라면 부산 초원복집 사건을 일으킨 김기춘 전 법무장관을 비서실장으로 기용하는 데 심중한 배려와 설명이 있어야 마땅했을 것이다. 이번 청와대 수석 인사에서도 호남을 배려한 노력이 있었는지 궁금하고, 박 대통령을 돕는 대표적 원로그룹인 이른바 ‘7인회’에는 왜 호남인사가 없는지도 궁금해진다.
얼마 전 인문정신문화계 인사들을 청와대로 초청한 경우도 그렇다. 초청된 13명의 인사 중 광주·호남 지역의 향촌석학이 누구였던가 하는 의문이 든다. 국정의 모든 것을 지역별로 따지고 가리고 하는 것은 불필요한 국력낭비라는 것을 이해는 한다. 그래도 광주가 우리나라 대표적 예향(藝鄕)이라고 자랑을 하고, 초청 대상이 인문정신문화계 주요인사라고 하니 그런 생각이 드는 것이다.
호주로 이민 간 한 여자동창생이 얼마 전 오랜 세월을 건너 소식을 전해왔다. 광주가 고향인 그녀는 소설가 지망생으로 남다른 필력을 가지고 있어 상당한 촉망을 받던 재원이었다. 그러나 그 애는 1980년 봄 교문이 닫히자 고향으로 내려갔다가 5·18을 경험한 후 서울에 올라와 입을 닫았다. 전에는 명랑하고 귀여운 애였다. 침묵으로 학교에 다니면서 광주에 대해서는 끝까지 한마디도 하지 않고 졸업을 했다. 동창생들은 누구도 그 애에게 광주에 대해 말붙이기를 하지 않았다. 얼마간의 방송작가 생활을 하다 한국을 떠난 여자. ‘광주’는 우리가 감싸 안아야 할 아픔이다. 대통령이 좀 더 친밀히 다가갔으면 한다.
편집인 soo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