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을 넘어 미래한국으로] 롤랜드버거 코리아 이석근 대표 “獨 대기업은 과실 국민들과 나눠”

입력 2013-08-11 17:19 수정 2013-08-11 22:29


“대기업은 과실을 국민들과 나눠야 한다. 국내 일자리를 창출하고 중소기업을 지원해야 한다.”



롤랜드버거(Roland Berger Strategy Consultants)는 유럽 최대의 경영전략 자문회사다. 롤랜드버거 코리아의 이석근(50·사진) 대표는 독일 대기업의 힘으로 ‘상생’을 꼽았다. 지난달 30일 서울 광화문 교보빌딩에서 만난 그는 “어느 회사건 처음에는 중소업체에서 시작해 중견기업으로, 다시 대기업으로 성장한다”면서 “독일 대기업들이 올챙이 시절을 잊지 않고 중견·중소기업과 공정한 관계를 맺고 있는 점을 눈여겨봐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그가 언급한 상생은 협력업체뿐 아니라 기업의 이해관계자, 나아가 사회 구성원을 모두 아우르는 개념이다.



이 대표는 독일에선 대기업의 역할이 명확하다고 강조했다. ‘글로벌 시장에 집중하면서 중소기업의 성장을 지원하고 국내 고용을 유지한다’는 게 핵심이다. 그는 “경영 효율을 생각하면 중국이나 루마니아 등 상대적으로 인건비가 저렴한 시장에 공장을 세우는 게 좋겠지만 독일 기업들은 목표 자체를 국내 고용, 일자리 창출에 둔다”며 “그렇지 않으면 존경받지 못하고 지속적으로 성장할 수 없다”고 말했다.



실제 ‘고용 기여도’는 한국 대기업과 독일 대기업을 가르는 가장 큰 차이점이다. 롤랜드버거가 분석한 자료를 보면 한국과 독일의 ‘포천 500대 기업’은 2012년 각각 13개, 32개로 이들 매출이 국내총생산(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62.3%, 64.5%로 엇비슷했다. 하지만 우리나라 대기업의 고용 비중은 13.2%로 독일(40.0%)의 3분의 1 수준이었다.



이 대표는 “경제 기여도는 비슷하지만 독일의 고용과 분배가 훨씬 건강하다는 증거”라며 “기업이 성장하면서 거두는 과실을 국민들과 나누기 때문에 대기업에 대한 반감이 덜하다”라고 지적했다. 그는 최근 우리나라에서 경제민주화 논의가 불거진 것도 대기업 위주의 일방적인 성장에 대한 국민들의 불만이 수용 가능한 수준을 넘어섰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독일의 대기업은 고용을 통해 사회 구성원들과 상생을 추구하면서 협력업체에 경영 스탠더드를 확산시키는 방식으로 동반성장을 도모하고 있다. 이 대표는 “한국의 대기업들은 중소업체가 제품을 가지고 오면 최종적으로 납품 여부만 결정한다”며 “독일은 ‘기술과 정보를 공유할 테니 함께 만들어보자’는 식”이라고 설명했다. 일본 도요타가 부품 결함으로 도산 위기까지 갔듯이 협력업체 수준이 곧 대기업의 경쟁력으로 연결된다는 인식이 강하다는 것이다.



그는 소유와 경영이 분리된 가족경영도 독일 대기업의 강점으로 꼽았다. 독일은 6∼7세대에 걸쳐 가업을 잇는 사례가 적지 않지만 우리나라에서처럼 가족경영을 바라보는 시선이 부정적이지 않다. ‘오너의 경영 능력이 입증되면 계속 해도 좋다’는 사회적 합의가 있기 때문이다. 오너 역시 부를 지속적으로 계승하기 위해 전문경영인을 두는 게 낫다고 판단되면 외부 사람을 영입하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반면 소유와 경영이 결합된 우리나라 대기업은 장기적인 시각에서 과감한 의사결정을 내릴 수 있지만 내부에서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기 힘들다는 한계가 있다.



이 대표는 국내 대기업들이 나눔, 상생, 동반성장을 신경영 기조로 정착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기업이 수익을 극대화해 사회에 어떻게 기여할 수 있을지 고민해야 할 시점”이라며 “공유가치 창출에 주력하지 않으면 존립 자체가 위험해질 수 있다”고 말했다.

권지혜 기자 jh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