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양궁, 2016 올림픽 금맥캐기 ‘무결점 훈련’ 돌입
입력 2013-08-09 19:20
리우데자네이루 정복 위한 X파일 첫 공개
핑∼ 핑∼. 화살들이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간다. 퍽∼ 퍽∼. 화살은 정확하게 과녁을 뚫는다.
지난 8일 오후 서울 공릉동 태릉선수촌 양궁 훈련장. 숨이 턱턱 막혔다. 영상 34℃. 남자부의 오진혁, 이승윤, 임동현, 진재왕 그리고 여자부의 기보배, 윤옥희, 장혜진, 주현정. 8명의 태극 궁사는 무더위에도 아랑곳없이 묵묵히 활시위를 당기고 있었다.
장영술(사진) 양궁 국가대표 총감독은 ‘한국 양궁이 강한 이유가 이런 훈련 때문이냐’는 질문에 빙긋 웃더니 노트북을 켰다. 파일 하나가 열렸다. 제목은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이었다. 처음으로 공개된 ‘X파일’이었다. 파일엔 양궁 본선이 열릴 삼보드로모(Sambodromo·카니발을 위해 특별히 만들어진 경기장)의 위성사진과 수용 인원(약 6만명), 올림픽 기간(2016년 8월 5∼21일)의 평균 기온(21℃), 예상 강우량(50㎜), 풍속(1.8㎧), 습도(80%), 풍향(남동풍), 국내외 선수 기록, 훈련 계획 등 갖가지 정보가 들어 있었다.
장 감독은 2012년 런던올림픽이 끝난 직후 이 파일을 만들었다고 했다. “4년이나 남았는데…”라고 하자 장 감독은 “4년이나 남은 게 아니고 4년밖에 안 남은 것”이라고 되받아쳤다. “리우데자네이루 현지에서 예상되는 상황을 하나도 놓치지 않고 완벽하게 대비해야 금메달을 딸 수 있어요.”
장 감독이 ‘무결점 훈련’에 집착하게 된 것은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이 끝난 직후였다. “그때 남자 양궁은 컨디션이 정말 좋았어요. 그런데 결과는 ‘노 골드’였죠.” 당시 남자부 코치였던 장 감독은 잠시 뒤 말을 이었다. “대형 멀티비전이 선수들의 얼굴을 비추고, 많은 관중이 환호성을 지르니 우리 선수들이 당황해서 제 기량을 발휘하지 못했던 겁니다. 현지 적응에 실패한 거죠.”
이후 대한양궁협회는 현장적응 훈련을 강화했다. 2004년 아테네 올림픽을 앞두고는 파나티나이코 경기장의 시뮬레이션을 선수들에게 반복적으로 보여 줬다. 파나티나이코 경기장엔 인조잔디가 깔려 있었기 때문에 당연히 인조잔디에서 훈련했고, 구조가 비슷한 서울 경륜장을 찾기도 했다. 그리고 철저한 대비 덕분에 태극 궁사들은 남녀 단체전과 여자 개인전에서 금메달을 따냈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은 지금 생각해도 화가 납니다. 중국 관중이 심한 텃세를 부릴 걸 예상하고 철저하게 대비를 했어요. 그런데 그렇게까지 할 줄은 몰랐습니다. 양궁 선수 출신이라는 어떤 중국인은 여자 개인 결승전 때 박성현이 활시위를 당기면 귀가 아프도록 호각을 부는 겁니다. 그러면 보조용구인 클리커의 ‘딸깍’ 하는 소리를 못 들어요.” 장 감독은 흥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박성현을 1점 차로 제치고 금메달을 딴 장 쥐엔쥐엔은 약 30억원의 포상금을 받았다.
장 감독은 “2012년 런던 올림픽 땐 변덕스러운 날씨에 대비했기 때문에 여자 양궁 단체전 7연패의 위업을 이룰 수 있었다”고 말했다. 중국과의 여자 양궁 단체전 때 폭우가 쏟아졌다. 바람도 거세게 불었다. 중국 선수들은 마음이 흔들리면서 활까지 흔들리고 말았다. 반면 이성진, 최현주, 기보배는 이미 남해의 거센 바람 속에서 수도 없이 활시위를 당겼기 때문에 흔들리지 않았다.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에선 무엇이 가장 큰 적이 될 것으로 생각하느냐’란 질문에 장 감독은 “12시간에 달하는 시차”라고 대답했다. “하지만 시차 적응보다 더 중요한 것은 공평한 평가 기준으로 대표선수를 뽑는 것입니다. 어느 종목이든 국가대표 선발에 학연과 지연이 개입되면 망합니다. 현재 남녀 세계 랭킹 1위인 오진혁과 기보배도 긴장의 끈을 늦추지 않아야 리우데자네이루에 갈 수 있어요.”
오진혁과 기보배 ‘신궁 커플’은 나란히 사대에 서서 리우데자네이루를 향해 화살을 날리고 있었다. 오진혁에게 ‘휴가는 다녀왔느냐’고 물었더니 겸연쩍은 표정으로 이렇게 말했다. “토요일도 못 쉬는데 휴가는 꿈도 못 꿉니다.” 기보배에게 ‘양궁이 다시 찬 밥 신세’라고 하자 생글거리며 말했다. “올림픽 때만이라도 국민들이 저희에게 관심을 가져 주시는 게 어딘데요.”
글·사진=김태현 기자 taehy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