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막의 영성] 십자가, 세상과 욕망을 포기하는 삶
입력 2013-08-09 19:12
십자가 사건은 기독교의 중심이다. 십자가 없는 기독교는 전혀 기독교가 아니다. 어느 시대나 교회가 십자가를 강조했을 때 교회는 하늘의 별처럼 빛났다. 성경에 기초하여 교회는 십자가를 과거의 일이자 현재진행형으로 보았다. 그리스도께서 지셨던 과거의 십자가는 화목과 구원, 그리고 승리와 위로를 얻는 수단이었다. 매주 드리는 성만찬 중심의 예배는 이 과거를 늘 기억하는 행사였다.
순교의 시대 십자가
개인적으로 그리스도인들은 세례 받는 순간 주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기에 십자가는 과거의 일이 된다. 이와 다른 ‘오늘의’ 십자가도 있다. 세례 받는 뒤 죽을 때까지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눅 9:23)가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삶이기 때문이다. 과거의 십자가와 현재의 십자가, 이 두 가지 측면을 함께 갖는 것이 제대로 가는 길이다. 역사 속에서 이 균형을 상실한 교회는 변종 기독교가 되었다.
초대교회는 순교의 시대였기에 별 어려움 없이 중심을 잡을 수 있었다. 로마제국 통치 때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순교 후보자가 되는 것이었다. 참된 그리스도인이라면 피의 순교를 피할 수 없었다. 고난을 피하려고 배교하는 것은 용서받을 수 없는 대죄였다. 교회는 자신을 송두리째 희생 제물로 드림으로 참 제자가 되고 그리스도를 닮게 된다고 강조했다. 십자가의 희생을 통해 베푸신 구원의 은혜에 보답하는 가장 좋은 길은 자신을 십자가에 못 박아 드리는 것이라고 가르쳤다.
그러나 로마의 권력이 기독교를 합법종교 중의 하나로 공인하자 순교자들이 더 이상 나올 수 없게 되었다. 교회는 급격히 변화한 환경에서 십자가를 다른 방식으로 체험했다. 라틴어로 성경을 번역한 제롬은 “피를 흘리는 데만 순교가 있다고 생각하지 맙시다. 순교는 항상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그가 말한 순교는 자아와 세상에 대한 죽음이었다. 이것은 전 생애에 걸쳐 짊어져야 하는 오늘의 십자가였다. 교회는 금욕에 의한 매일의 순교를 환영했다. 세상에서 물러난 수도사들은 자신들을 순교의 계승자로 보았다. 그들이 하나같이 좋아한 구절이 있었다.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갈 6:14).
4세기 말, 이 구절을 가지고 이집트의 한 수도원 원장인 피누피우스 사제는 새로 입회한 초보 수사에게 다음과 같이 가르쳤다.
“이 말씀을 듣고 자네는 ‘사람이 어떻게 계속 십자가를 질 수 있을까? 살아 있는 사람이 어떻게 십자가에 못 박혀 있을 수 있을까?’하고 의문을 가질 수 있다. 실제로 십자가에 못 박힌 자는 마음대로 자기 몸을 움직이거나 돌릴 수 없다. 이처럼 우리도 자기 욕망과 소원을 따라 우리가 좋아하는 대로 할 수가 없다. 지금 우리는 하나님의 법에 묶여 있다. 십자가에 못 박힌 자는 현실 문제를 심사숙고하거나 자기 정욕에 마음을 두지 않는다. 내일을 위해서 걱정하거나 신경을 쓰지 않는다. 그는 소유욕이나 교만이나 말다툼이나 질투 같은 것으로 흥분하지 않는다. 지금 당하는 모욕을 아파하거나 과거에 겪은 냉대를 기억하지도 않는다. 지금도 여전히 숨을 쉬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모든 면에서 자신은 이미 죽은 자로 여기고, 곧 넘어가야 할 그곳에 마음의 시선을 돌린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경외하여 십자가에 못 박힌 우리도 이 모든 사물에 대해 죽은 자로 자처해야 한다. 다시 말하면 육신적인 모든 악들과 이 땅의 모든 것들에 대하여 죽은 자로 간주해야 한다. 그리고 매순간 건너가기를 소망하는 천국에 우리 영혼의 눈을 고정시켜야 한다. 이런 식으로 우리는 모든 욕망과 정욕을 억누를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가 포기한 것들 중에 어떤 것도 다시 취하지 않도록 조심하자. 주님께서 금하신 것을 위반하고, 복음적 삶의 방식에서 돌아서서 벗어버렸던 옷을 다시 입지 말아야 한다. 천하고 속된 이 세상의 욕망과 추구로 돌아가지 말자. 포기한 것들 중에 어떤 것을 다시 꺼내지 말자.”
마음 속에도 십자가를
그는 수도사가 십자가에 못 박힌 사람이라고 확신한다. 그 증거는 세상과 욕망을 포기하는 삶이다. 곧 넘어갈 천국에만 시선을 두고 사는 것이 그 표지다. 늙은 수도사에게 복음적인 삶이란 바로 그런 것이다. 수도원까지 가지 않아도 우리 또한 이미 십자가에 못 박힌 사람이다.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갈 5:24). 죽음은 이미 정해졌다. 그 세계를 넘어가면 다른 세상으로 옮겨간다. 그때까지 우리는 계속 십자가에 굳게 붙들린 사람으로 살아야 한다. 십자가형은 사람의 목숨을 단숨에 죽이지 않았다. 중간에 누가 끌어내리는 일을 하지 못하도록 집행자 로마 군인들은 죽을 때까지 매달아두고 지켰다. 우리는 한 번 회개하며 정욕과 탐심을 못 박았다 할지라도 죽기까지 거기에 놓아두어야 한다. 내가 지금 십자가를 지고 있다면 행할 수 있는 일이다. 십자가를 건물에만 달아 두지 말고 우리 마음에 다시 올려보자.
김진하 교수<백석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