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와 고난] 남편·제자 떠나보내고… 사역지 떠나지 않는 이유? “선교사명은 계속돼야죠”
입력 2013-08-09 18:19
기독교 역사는 ‘선교사 수난사(史)’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들의 목숨을 건 희생 덕분에 한국을 비롯한 세계 곳곳에 교회가 세워지고 복음이 전파됐다.
전 세계 복음화를 위한 선교사 수난사는 21세기인 지금도 현재진행형이다. 근래에도 선교지에서 태풍과 지진 같은 자연재해나 강도·살인·납치 등 각종 범죄행위로 고통받는 선교사가 적지 않다. 또 풍토병이나 교통사고, 내전, 폭탄 테러 등으로 가족 모두가 목숨을 잃기도 한다.
이러한 온갖 위험에도 선교사들이 사역지를 떠나지 않는 이유는 ‘모든 일에 하나님의 섭리가 있다’는 믿음 때문이다.
필리핀 오순옥(46·여) 선교사와 김숙향(54·여) 선교사가 그 대표적인 예다. 이들은 남편의 죽음에도 선교지에 남아 남편의 사역을 이어가고 있다. 오 선교사의 남편인 고 조태환 선교사는 1999년부터 필리핀 선교활동을 시작했다. 마닐라 인근 빈민촌 아렌다에 ‘아렌다평강교회’를 세워 오 선교사와 어린이 사역, 집짓기 봉사활동 등을 펼친 조 선교사는 2010년 괴한의 총격으로 피살됐다. 갑작스러운 남편의 죽음에 오 선교사는 큰 충격을 받았지만 ‘어떤 상황에도 선교의 사명은 계속돼야 한다’는 생각으로 마음을 다잡았다. 기도로 아픔을 극복한 오 선교사는 남편이 개척한 교회를 맡아 빈민가 어린이 교육과 집짓기활동에 힘쓰고 있다.
김숙향 선교사 역시 필리핀 빈민촌 톤도에서 남편이 진행했던 교육사역을 하고 있다. 전과 34범 전력을 지닌 호세 발라이스 목사와 93년 결혼해 빈민촌 어린이 100여명을 먹이고 가르치던 김 선교사는 2008년 6월 교통사고로 남편을 잃었다. 하지만 슬픔은 오래가지 않았다. 남편의 죽음에 하나님의 뜻이 있다는 것을 확신한 그는 같은 해 10월 톤도에 방과후 교육센터를 매입했다. 100명으로 시작한 교육사역은 2012년 현재 750여명의 어린이에게 확대됐다. 교육센터 출신 어린이 18명을 필리핀 명문 대학에 보내며 지역사회에 큰 반향을 일으킨 김 선교사는 더 많은 빈민촌 어린이에게 꿈을 심어주기 위해 어린이뿐 아니라 부모 교육에도 앞장서고 있다.
동역자를 사고로 잃고 ‘선교 헌신’의 의미를 되새긴 경우도 있다. 강경 무슬림이 다수를 차지하는 아프리카 A부족에게 지하수 사역을 펼치는 윤서(40·가명) 선교사는 2008년 차량전복 사고로 교회학교 제자이자 동역자인 송혜진(24·여)씨를 잃었다. 윤 선교사의 사역지에 한국국제협력단 봉사단원으로 온 송씨는 빈곤과 물 부족으로 고통 받는 A부족 어린이의 실상을 알리려다 온 지 석 달 만에 사고를 당했다. 제자를 잃은 윤 선교사는 한동안 슬픔에 휩싸였지만 ‘선교사의 헌신’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게 됐다고 말했다. 윤 선교사는 “그동안 내가 ‘겉멋 든 껍데기 헌신’을 했다는 걸 깨달았다”며 “이웃을 진심으로 사랑한 혜진이의 모습에서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죽음이 무엇인지를 묵상할 수 있었다”고 고백했다.
양민경 기자 grie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