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레이크 없는 ‘설국열차’] 관객 호기심 자극했다, 이 영화… 푹풍 질주

입력 2013-08-10 03:59


아직 안 보셨나요?

봉준호(44) 감독의 ‘설국열차’가 폭염 속에 질주하고 있다. 틸다 스윈튼, 크리스 에반스 등 할리우드 배우들이 대거 출연했고 영어대사로 진행되기 때문에 봉 감독의 할리우드 진출작이라고 오해하는 이도 있다. 그러나 이 영화는 봉 감독이 할리우드 배우를 캐스팅해 만든 ‘한국영화’다. 요즘 인터넷에는 설국열차에 나오는 ‘양갱’이 무엇으로 만들어졌는지 등 소소한 이야기까지 화제다. 국내 개봉작 중 최단 기간 500만 관객을 동원하며 1000만 관객까지 바라보는 이 영화에 궁금한 게 많다. 흥행 비결과 전망 등 여러 궁금증을 이모저모 짚었다.

# 설국열차, 기대치와의 싸움에서 이기다

영화는 기대치와의 싸움이다. 봉 감독의 설국열차는 일단 기대치와의 싸움에서 이긴 것으로 보인다. 한국영화 역대 최대 제작비인 450억원이 든 대작, ‘살인의 추억’ ‘괴물’ ‘마더’ 등 내놓는 작품마다 관객을 열광하게 했던 감독의 4년 만의 신작. 그와 운명적으로 만난 듯한 배우 송강호. 그리고 할리우드 스타 크리스 에반스와 개성 있는 명배우 틸다 스윈튼. 설국열차는 개봉 전 관객의 기대가 어느 작품보다 한껏 부풀 수밖에 없었다.

이런 기대치는 아이러니하게도 흥행의 가장 큰 걸림돌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일까. 언론 시사회 후 영화평은 갈렸다. 호불호가 뚜렷이 나뉘었다. 걸작이라는 평도 있었지만, 기대에 못 미친다는 얘기도 만만치 않았다. 잔인한데 어떻게 15세 관람가를 받았는지 모르겠다, 잔재미 없이 메시지만 강조했다, 외국영화 같다, 할리우드 배우의 인지도가 떨어진다, 봉 감독의 색채가 약해졌다는 등 안 좋은 평도 있었다. 그러나 이런 평조차도 설국열차의 흥행 폭주를 가로막을 수는 없었다.

왜? 평이 어떻건 ‘내 눈으로 확인하고 싶다’는 관객이 많았기 때문이다. 영화를 보고 난 관객의 반응도 엇갈렸다. 여러 얘기가 나왔다. 메시지를 강조한 것 같은데 메시지가 뭔지 정확히 모르겠다는 얘기가 많았다. 여러 사람의 입에서 오르내리면 궁금해진다. 남들이 보는 거 나도 봐야지, 안 보면 나만 뒤처지는 것 같다는 심리도 작용했다. 여기에 봉 감독의 영화를 오래 기다렸던 사람이 꽤 많았다. 몇 년 동안 영화 한 편 보지 않던 이들이 이 영화는 무조건 봐야 한다고들 했다. 가족 단위 관람객도 많았다. ‘필수 관람 영화’ 같은 분위기가 조성된 것이다.

특히 중장년층의 힘이 컸다. 보통 중장년층은 개봉 2∼3주차에 움직이는데 ‘설국열차’는 개봉 첫 주말에 움직였다. 7일 극장 체인 CGV에 따르면 설국열차의 40대 관객비율은 27.8%. 1000만 이상의 관객이 든 영화의 경우 40대 비중이 큰 것이 특징이다. CGV 측은 “40대 관객은 이 영화로 지적 갈증을 채우려는 움직임이 있는 듯 보인다. 철학을 담은 영화라고 보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평론가들은 대체로 후한 점수를 줬다. 영화평론가 전찬일씨는 “대중 영화의 힘은 뭐니 뭐니 해도 이야기를 끌고 가는 힘인데 이야기의 힘이 대단하다”고 평했다. 기술력을 앞세운 김용화 감독의 ‘미스터 고’가 결국 빈약한 이야기 전개의 파고를 넘지 못하고 150만 관객에서 주저앉은 것과는 대조되는 부분이다. 강유정 평론가는 “봉준호라는 감독이 가진 브랜드와 파워, 할리우드 배우들에 대한 호기심, 한국 자본으로 만들어진 블록버스터라는 점이 관객에게 초반에 통하면서 이슈를 선점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 설국열차, 다시 보는 관객 많다. 왜?

설국열차는 개봉 10일 만에 500만 관객을 넘었다. 각각 열흘 만에 500만을 돌파한 ‘도둑들’ ‘아이언맨 3’와 함께 역대 가장 빠른 흥행속도다. 영화를 다시 보는 관객도 많다. 영화 예매 사이트 맥스무비에 따르면 이 영화의 재관람률은 4.08%. 다른 영화에 비해 압도적으로 높은 수치다. 관객 수 400만명 기준으로 환산해 추정하면 약 16만명이 며칠 새 설국열차를 다시 봤다는 뜻이 된다. 맥스무비 측은 “이는 봉준호 감독 영화의 특징이기도 하다. ‘살인의 추억’은 재관람률이 5.55%, ‘괴물’은 6.52%를 기록했다. 특히 영화를 다시 보는 관객은 30대가 주를 이루고 있다”며 “일본 소설의 무라카미 하루키 현상처럼 한국영화의 ‘봉준호 현상’을 방증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영화를 본 후 ‘이 부분이 재미있었다는데 왜 나는 놓쳤지? 다시 볼까’ 생각하는 관객도 있고, 메시지가 뚜렷하게 다가오지 않아 다시 보고 싶다는 관객도 있다. 감독이 던지려는 메시지는 ‘희망’이다. 그는 기자 간담회에서 “100% 희망적인 엔딩을 생각하고 찍었다. 한 시스템이, 한 체제가 종말을 고했고 인류의 새로운 시작”이라고 말했다. 반대로 생각하는 관객을 위해서는 ‘열린 결말’이라며 다른 해석의 여지도 남겼다.

이 영화의 홍보사 앤드크레딧 측은 “어떤 이는 설국열차를 우리 사회와 계급의 축소판으로 보며 철학적이고 진지하게 접근하고, 어떤 이는 그냥 더운 여름 시원하게 볼 수 있는 액션영화로 본다”고 말했다.

# 설국열차, 1000만 관객 넘을까

제작비 450억원이 든 이 영화의 손익분기점은 대략 500만∼600만명이다. 설국열차가 초반 ‘호불호’가 갈리는 위기 상황을 극복하고 순항하자 투자배급사인 CJ엔터테인먼트도 고무됐다. 당초 배급하기로 했던 장혁·수애 주연의 ‘감기’도 제작사인 아이러브시네마에 넘기고 설국열차에만 올인하기로 했다. 감기도 100억원대가 든 대작. CJ가 설국열차에 얼마나 총력을 기울이는지 보여주는 대목이다.

마케팅 전문가들은 ‘1000만 영화’의 탄생을 조심스레 예상하는 분위기다. ‘7번방의 선물’ ‘감시자들’을 히트시킨 영화사 ‘뉴(NEW)’의 박준경 마케팅 팀장은 “우리나라에서는 나오기 어려운 구조의 영화라서 이런 점을 관객들이 높이 산 듯하다. 정말 예측하기 어려운 수치지만 1000만명 동원의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명필름의 심재명 대표는 “호불호가 엇갈리는 작품이지만 그래서 ‘안 봐야지’가 아니라 ‘내 눈으로 보고 확인해야지’ 하는 정서가 더 큰 것 같다. 특히 더위가 기승을 부리는데 ‘설국’이라는 말이 주는 시원함도 흥행의 호재로 작용하는 것 같다”며 “1000만명에 근접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홍보사 앤드크래딧 측은 “요즘 관객 수는 정말 예측이 힘들다. ‘은밀하게 위대하게’가 초반 빠른 속도로 관객몰이를 하다가 어느 순간 기세가 확 꺾인 것을 보면 더욱 그렇다. 잘되길 바라며 조심스럽게 지켜보고 있는 중”이라고 말했다.

# 글로벌 프로젝트 성공할까

설국열차는 글로벌 프로젝트인 만큼 해외 흥행도 관심거리다. 개봉 전 이미 167개국에 선판매됐다. 그들은 고작 10분짜리 하이라이트 영상만 보고 이 영화를 샀다. CJ는 제작비의 절반에 해당하는 2000만 달러가량을 해외수출로만 벌어들였다. 계약조건도 좋다. 해당 국가의 흥행성적에 따라 수익도 늘어날 수 있는 ‘미니멈개런티’ 방식이라 흥행 여부에 따라 상당한 수익도 가능할 전망이다.

해외 개봉 시기는 빨라야 9월이 될 듯하다. CJ 측은 “국내 흥행의 최종 스코어를 보고 개봉 시기를 결정할 가능성이 크다”며 “해외 개봉 시기를 최대한 앞당기려 노력 중”이라고 말했다. 167개국 중 세계적인 배급사 와인스타인이 배급하는 미국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남아공 등의 해외판은 한국버전과는 다소 달라진다. 한국에서는 자막이 있기 때문에 영화 ‘속도감’에 문제가 없지만, 자막이 필요 없는 영어권 국가에서는 호흡이 다소 늘어질 수도 있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게다가 올 상반기, 북미 지역에선 지구 종말 콘셉트의 대작 영화 5∼6편이 모두 흥행에 실패한 전력이 있다. ‘설국열차’는 이들이 보기에 1억5000만∼2억 달러가 들어간 블록버스터에 비하면 4000만 달러밖에 안 되는 ‘작은 영화’다. 와인스타인 측이 먼저 “좀 더 속도감 있게 가자”고 제안했고, 봉 감독이 이를 받아들여 현재 재편집 중이다. CJ 이창현 홍보부장은 “원래 감독에게 재편집 권한을 주지 않는 와인스타인이 이례적으로 봉 감독에게 권한을 주었다. 감독이 직접 재편집을 하고 있는 만큼 속도감만 빨라지고 크게 달라지지는 않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최근 호주 외신이 보도한 ‘20분이 잘린 새 버전’은 오보임을 분명히 했다. 나머지 161개국은 한국에서 개봉된 버전으로 상영된다.

프랑스 원작 만화도 인기다. 민음사 계열 브랜드 세미콜론이 영화 개봉에 맞춰 내놓은 동명의 원작 만화는 1주일 만에 1만2000부가 나갔다. 이에 힘입어 원작만화가 장 마르크 로 셰트와 뱅자맹 르그랑이 13일 한국을 찾는다. ‘설국열차’에 나온 단백질 블록과 닮은 양갱도 화제다. ‘설국열차를 보러갈 때는 꼭 양갱을 갖고 가라’는 얘기가 돌 만큼 성분과 맛에 대한 얘기도 다양하다. 이래저래, 올여름 극장가의 대세는 ‘설국열차’다.

한승주 기자 sjha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