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조용래] 고전읽기의 추억
입력 2013-08-09 18:23
1970년 여름, 중학교 1학년 때였다. 방학은 했지만 거의 매일 학교에 나와야 했다. 강제적인 책읽기 대회에 선발된 탓, 이름 하여 자유교양대회 준비다.
방학 전 십여 권의 책을 받았을 때는 무척 뿌듯했다. 궁핍이 보통인 그 시절 한꺼번에 많은 책을 선물받았으니. 처음 보는 동서양의 고전들이 주는 신선함은 어린 마음에도 뭔가 대단한 일에 참여한다는 느낌을 주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한더위에 교실에 몰려 앉아 책을 읽는 것은 여간 고역이 아니었다. 게다가 그저 읽기만 하는 게 아니라 날마다 얼마나 읽었는지 보고를 해야 했고 무엇보다 읽은 책에 대한 시험도 치러야 했다. 책읽기의 즐거움은 온데간데없고 거의 시험공부나 다를 바 없었다.
자유교양대회는 68년부터 75년까지 진행됐는데 전국 초중고교(나중엔 대학생과 일반인도 가세) 학생들에게 총 130여종의 책을 읽도록 유도하고 책 내용에 대해 콘테스트를 하는 국가사업이었다. 해마다 전국대회 수상자들은 청와대에 초청돼 영부인인 육영수 여사의 치하도 받았다.
행인지 불행인지 그해 우리 학교는 지역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올리지 못해 강제적인 책읽기에서 벗어났다. 그 이듬해도 비슷한 상황이 벌어졌지만 전국대회까지는 진출하지 못했다. 신설 중학교인 탓에 고교입시에 초점이 맞춰지면서 자연스럽게 자유교양읽기는 잊혀졌다.
엊그제 박근혜 대통령이 인문·정신문화계 인사들과의 오찬에서 국민행복과 문화융성 등 4대 국정기조 실현의 열쇠가 인문학에 있다고 말했다는 소식을 접하면서 40여년 전의 자유교양대회가 생각났다. 그의 어머니가 그랬던 것처럼 박 대통령은 청와대에서 인문학의 중요성을 강조했다는 게 아닌가.
자유교양대회의 취지는 고전을 읽고 ‘조상의 얼을 빛내 민족중흥을 이루자’는 데 있었다.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으로 시작되는 국민교육헌장이 68년 선포된 것과도 연관성이 적지 않다. 말하자면 권력이 앞장서 가정, 학교, 사회에 교육의 붐을 일으키겠다는 것이다.
새 정부의 문화융성이란 국정목표가 오버랩되는 듯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물론 박 대통령의 인문학 중시론이 단지 과거의 추억에서 시작된 것은 아닐 터. 그건 그렇고 이번 주말에는 고전읽기의 추억을 되살려 더위라도 이겨봐야겠다.
조용래 논설위원 choyr@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