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뚤어진 팬문화] 고가 선물은 인기 척도… ‘오빠’가 품목 지정하기도
입력 2013-08-10 04:03 수정 2013-08-10 10:04
“가끔 괴롭습니다.”
현장에서 만난 열혈 팬 강민경(27·여·가명)씨는 한숨을 쉬었다. 강씨는 좋아하는 스타에게 소박한 정성을 보여주고 싶다는 이유로 ‘서포트’ 활동을 시작했다. 그러나 그가 경험한 ‘서포트’는 생각했던 것과 크게 달랐다.
강씨가 좋아하던 가수 K가 컴백하는 무대였다. 팬카페에서는 그를 위해 수십만원짜리 보양 도시락을 준비한다며 모금을 했다. 카페지기는 비교적 나이가 있는 강씨에게 10만원 이상 낼 것을 은근히 강요했다.
그러나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K가 출연하는 방송프로그램의 스태프를 위해 100여개의 도시락을 함께 준비해야 한다는 것이다. 강씨에겐 다시 8만원의 추가 추렴이 강요됐다.
“다른 카페의 경우 아예 촬영 현장에 ‘밥차’를 부르는 경우도 있어요. 몇 백만원 깨지죠. 가수가 배우로 데뷔해 첫 리딩(대본연습)이라도 들어가면 같이 출연하는 배우와 스태프를 위해 도시락 주문배달을 시켜요.”
이들이 이렇게 ‘조공’을 바치는 것은 내가 좋아하는 스타가 다른 멤버보다 ‘서포트’를 적게 받으면 기가 죽는다는 이유에서다. 이상한 논리지만 그들에게는 당연하다.
이처럼 팬클럽 간 경쟁의 결과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을 통해 공개되면서 세 과시로 드러난다. 조공을 받은 연예인이 SNS ‘인증’이라도 해주면 팬들은 그 위세로 상대 연예인 팬클럽을 제압했다는 만족감을 얻는다.
◇조공이 당연한 ‘오빠’, 팬들은 지친다=조공을 당연하게 생각하는 스타들과 팬카페 운영자는 건전한 팬덤(특정한 인물이나 분야를 열정적으로 좋아하는 현상) 문화를 해치는 이들이다.
“자기 계좌에 송금 받는 스타요? 그런 연예인 꽤 있어요. 저와 같이 맹신하는 팬들에게 ‘작업실 앰프가 고장 나 일을 못하고 있다’는 메시지라도 남겨 보세요. 당장 ‘오빠, 제가 도움이 됐으면 해요. 계좌번호 주세요’라고 답하는 팬이 즐비합니다. 약탈 아닌가 하는 생각에 뒤늦게 철이 들더라고요.”
몰지각한 일부 스타는 스태프는 물론이고 자기 가족까지 챙긴다. ‘어버이날 부모님 선물해 드려야 하는데…’라는 말로 백화점 상품권 등을 얻는가 하면 심지어 애완견 애견식 등과 같은 관련 용품을 ‘조공’으로 받기도 한다.
“선물만 받는 건 양반이죠. 스타의 부모 출퇴근 운전수를 자처하는 팬도 있더라고요. 그 부모님 집안 청소를 해 주러 가는 팬도 봤어요. 자기 자녀 생일을 고지해 챙기기도 하고요.”
◇‘조공’ 넣기 위해 투잡 병행, 사채까지…=‘서포트’에는 당연히 엄청난 돈이 들어간다. 몇 백만원에서부터 억원대에 이르기까지 팬카페 규모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이들은 모금을 우선하지만 모자랄 경우 팬클럽 운영자가 사비를 털기도 하고, 또 횡령 사건에 휘말리기도 한다.
모 팬클럽은 생일 파티를 열어 고가의 선물을 했으나 회원들의 회비 납부 실적이 좋지 않았다. 운영자는 자신의 카드로 선물을 먼저 샀기 때문에 연체에 시달렸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사채를 썼다. 사채를 갚기 위해 투잡도 했으나 결과적으로 고스란히 빚만 떠안고 퇴장해야 했다.
강씨가 알고 지내던 다른 팬 P씨는 자신이 좋아하는 스타 A의 생일을 위해 사채를 썼다. ‘A의 생일인데 기죽게 할 수는 없다’는 생각에 케이블TV 금융 광고를 보고 300만원을 빌렸다가 원금보다 수 배 많은 이자를 물어야 했다. 팬 활동을 하면서 틈틈이 찍어 둔 오빠의 사진이나 영상들을 같은 팬들에게 판매해 보태기도 했다.
반대로 고가의 제품을 구입하면서 값을 부풀리거나 잘 아는 거래처를 통해 이익을 남겨 클럽 회원 간 분쟁을 낳기도 한다. 2010년 그룹 ‘티아라’의 팬클럽에서는 티아라를 위해 팬들이 모은 1000여만원을 운영자가 가로채 사라지는 일이 벌어졌다.
‘디시인사이드’ 그룹 동방신기 갤러리(현 JYJ 갤러리)에서도 비슷한 일이 일어났다. 악플로 바닥에 떨어진 한 멤버의 명예를 회복하기 위해 팬들이 모은 ‘악플러 고소 비용’ 수백만원을 ‘총대’를 멘 한 팬이 몽땅 들고 달아났다. 그러나 피해자들은 ‘오빠 망신’이 될까봐 사건을 덮었다. ‘디시인사이드’ 관계자는 “이러한 사기 사건은 생각보다 꽤 많지만 범죄가 일어나기 전에는 사이트에서 손쓸 길이 없다”고 말했다.
이은지 기자 rickonbge@kukimedia.co.kr
"JYJ 팬 소송 비용 모금" 관련 정정보도
지난 8월 10일자 6면 “고가 선물은 인기 척도… ‘오빠’가 품목 지정하기도” 제하의 기사에서 JYJ 팬 한명이 악플러 고소비용 모금액 수백만원을 들고 달아났다고 보도하였습니다. 그러나 관련 내용은 사실이 아니기에 바로잡습니다. 이 보도는 언론중재위원회의 조정에 따른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