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독 출신 작가 잉고 슐체 “1989년 통독 이후 성장이 새 이데올로기로…”

입력 2013-08-08 18:35


동독 출신 작가 잉고 슐체(51)가 만해대상 수상을 위해 한국을 찾았다. 올해 16회를 맞은 만해대상은 사랑과 평화의 메시지를 담은 작품을 내놓은 국내외 작가에게 주는 상이다.

서울 소공동 한 호텔에서 8일 만난 슐체는 ‘라이프치히 시위’를 언급하며 만해대상 수상 소감을 밝혔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기 꼭 한 달 전인 1989년 10월 9일, 구 동독의 라이프치히에서 벌어진 민주화 시위는 동독의 무혈 평화 혁명의 시발점으로 꼽힌다.

슐체는 “그날 대규모 시위가 폭력 없이 이뤄졌다는 것이 중요하다”며 “당시 폭력이 있었다면 분명히 이기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당시에는 만해(한용운)를 잘 몰랐지만 그런 비폭력 운동의 전통이 간디를 거쳐 만해까지 가는 것 아니겠느냐”며 만해의 비폭력 사상을 높이 평가했다. 그러면서 “정작 11월 9일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던 순간엔 실망스럽게도 자고 있었다”고 말해 좌중을 웃겼다.

슐체는 통일 이후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는 독일인의 일상을 담담하게 그린 소설로 주목받은 작가다. 98년 발표한 ‘심플 스토리’를 읽고 거장 귄터 그라스가 “이 시대의 진정한 이야기꾼”이라고 극찬을 했다는 일화로 유명하다.

그는 “89년 통일 순간은 동독 사람들에게는 ‘모든 것의 마지막’이었다”며 “음식도, 옷도, 화폐도, 거리 이름도, 심지어 공기와 사랑도 변했다”고 말했다. 그는 “갑자기 냉전 체제가 가면서 이데올로기를 강요하는 일은 없어졌다”며 “대신 성장이 새로운 이데올로기가 됐다”고 덧붙였다. 슐체는 “변화된 체제 안에서 사람들이 변하는 것을 지켜보는 게 중요하다”며 “특히 사람들이 두 체제를 어떻게 느끼면서 변화하는지를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한반도 통일에 대한 조언을 구하자 그는 “너무 빨리 하려고 서두르진 말라”고 말했다. 동독과 서독의 경제력 차이 때문에 상당히 빠른 템포로 통일된 것이 좋지만은 않았다는 것이다. 그는 “당시 동독과 서독은 서로 통행이 가능했지만 현재 북한은 교류도 없고 생활수준도 낮다”며 “북한을 동독과 비교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날 기자간담회에 이어 국내 팬들과의 만남, 수상식 참여 등의 일정을 소화한 뒤 독일로 돌아간다. 민음사가 ‘심플 스토리’와 2008년 작품 ‘아담과 에블린’을 번역해 소개하면서 국내에도 꽤 알려져 있다.

김나래 기자 nara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