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년퇴직하는 홀트아동복지회 김돈영 실장 “돌아보니 하루하루가 보람된 순간”
입력 2013-08-08 18:35
1977년 겨울. 26세 청년이 양손에 두 아기를 안고 강원도 춘천 시외버스터미널에 들어섰다. 등에는 아기 기저귀와 우유병이 든 가방이 매달려 있었다. 한겨울인데도 청년의 이마에는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버스가 굽이굽이 대관령 고개를 넘어가자 아기들은 약속이나 한 듯 토하며 울기 시작했다. 청년은 능숙하게 아기를 달래고 기저귀를 갈았다. 승객들은 측은한 눈빛으로 “젊은 아빠가 혼자 아기 둘을 키우려니 얼마나 힘드냐. 열심히 살라”는 격려의 말을 건넸다.
당시 ‘젊은 아빠’로 오해받은 이는 홀트아동복지회 김돈영(61) 복지사업실장이다. 입양이 결정된 아기들을 서울로 데려가는 길이었다. 이렇게 미혼모 상담부터 아기들 후송 업무까지 직접 담당하며 37년간 입양아 4000여명의 ‘아빠’였던 김 실장이 다음달 정년퇴직한다.
76년 홀트아동복지회에 입사한 그는 미혼모·입양 실무를 담당한 유일한 남자 직원이었다. 직접 새 가정의 품에 안겨준 입양아만 850명에 달한다. 김 실장은 8일 “총각 시절부터 우는 아기 달래고 기저귀 갈아주는 게 일이었다. 돌아보니 하루하루가 보람된 순간이었다”고 말했다.
처음엔 미혼모들이 상담하러 왔다가 ‘총각 상담사’를 보고 놀라 돌아서기도 했다. 이 때문에 더운 여름에도 넥타이를 풀지 않고 늘 정장 차림으로 상담에 나섰다. 옷차림부터 신뢰를 주기 위해서였다. 오랜 경험으로 그에게는 미혼모 상담 노하우가 쌓였다. 그중 하나는 상담하러 온 미혼모들을 다른 자리에서 우연히 만났을 때 절대 아는 체하지 않는 것이다. 김 실장은 “가벼운 인사도 미혼모들에겐 부담이 될 수 있어 늘 조심했다”고 말했다.
요즘은 공개 입양이 활성화됐지만 1980∼90년대만 해도 대다수 양부모가 비밀 입양을 선호했다. 입양일에 맞춰 출산하는 척해야 하는 양부모의 심리 상담도 그의 몫이었다. 임산부 행세를 해야 하는 양부모들은 정형외과에서 깁스할 때 쓰는 석고 틀을 불룩한 배 모양으로 만들기도 했다. 당시 김 실장이 상담했던 한 입양 대기 부모는 친딸 3명이 엄마 배에 매달릴 때마다 딱딱한 ‘가짜 배’가 들통 날까 늘 가슴 졸인 탓에 탈모 증세까지 나타났다고 한다.
입양된 아이가 잘 크고 있는 사진과 함께 양부모의 편지가 전해질 때면 힘든 것도 다 잊어버리곤 했다. 김 실장은 “입양될 아기들에게 애정을 쏟느라 정작 내 아이들에겐 소홀했던 것 같다”면서 “나와 인연을 맺은 입양아들이 나를 ‘친정아버지’처럼 생각하고 힘든 일이 있을 때 언제든 손을 내밀어 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글·사진=김유나 기자 spri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