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유가격 올린 정부, 이번엔 “물가억제”… 우윳값 묶기 원격조종 나섰나
입력 2013-08-08 18:08 수정 2013-08-08 22:13
‘원유(原乳)가격 연동제’에 따른 우윳값 인상이 사실상 무산됐다. 대형마트 등 유통업체가 8일 매일유업의 우유가격 인상에도 불구하고 종전 가격으로 판매키로 결정했기 때문이다.
농협 하나로마트는 정부의 물가상승 억제 방침과 우윳값 인상에 대한 비난 여론을 감안해 우윳값 인상분을 유통마진에서 빼는 방식으로 인상가를 반영하지 않기로 했다. 우유 제조업체와 협상을 통해 적정선의 가격이 정해질 때까지는 손해를 보더라도 가격 인상을 하지 않겠다는 게 하나로마트의 입장이다. 매일유업은 이날부터 흰우유 가격을 10.6%, 다른 유제품 가격을 9.0% 올릴 예정이었다.
하나로마트가 인상가를 반영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히면서 다른 대형마트들도 어쩔 수 없이 우윳값 동결 방침을 밝혔다. 이에 따라 대형마트에 제품을 납품해야 하는 ‘을’의 입장인 매일유업도 가격 인상을 보류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이에 따라 정부의 우윳값 인상 억제 정책을 위해 하나로마트가 총대를 멘 게 아니냐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원유가격을 올린 정부가 우유 제조업체에 직접 가격 인상을 억제할 명분이 없어 하나로마트를 통해 간접적인 압박을 했다는 분석이다.
실제로 지난달 31일 기획재정부는 시장 동향을 점검한다는 이유로 이마트·롯데마트·홈플러스와 하나로클럽 관계자를 불러 우유 판매가격에 대한 인상 자제를 요청한 바 있다.
대형마트 관계자는 “정부가 원유가격을 인상했으면서 대형마트에 가격을 인상하지 말라고 압박하고 있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우유 제조업체도 우윳값 인상을 마냥 미룰 수는 없다는 입장이다.
한 제조업체 관계자는 “원유가 인상으로 하루 1억∼2억원의 손실을 보고 있는데 그 부담을 제조사한테만 떠넘기는 것은 말이 안 된다”면서 “흰우유 업계 1위인 서울우유가 가격을 올리기를 기대하는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하나로마트는 서울우유가 가격을 인상하더라도 기존 가격대로 판매할 계획이다. 서울우유도 9일부터 적용하기로 했던 가격 인상을 시장 여건 등을 고려해 잠정 유예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소비자들은 당장 우윳값이 오르지 않아 환영하는 입장이나 대형마트와 제조업체들은 정부의 이중 플레이에 불만을 표시하고 있다.
서윤경 기자 y27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