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 푸어 양산] 매물 품귀 심각… 집보러 갔다 ‘허탕’ 일쑤

입력 2013-08-09 05:03

8일 오전 서울 잠실동 A아파트 단지. 결혼을 앞둔 여성 B씨는 20평형 전세 물건이 나왔으니 보러 오라는 말에 황급히 중개사무소를 찾았다. ‘요즘 전세 구하기 어렵다는데 다행이네’라며 안도한 것은 잠시뿐. 집을 보러 가는 도중 부동산 사장의 휴대전화 벨이 울렸다. ‘다른 부동산에서 계약금이 방금 입금됐으니 오지 않으셔도 된다’는 집주인의 전화였다.

전셋집 품귀 현상이 날로 심해지고 있다. 국민일보가 이날 서울의 부동산 업소 여러 곳을 취재한 결과 모든 업소에서 똑같이 ‘전세 물건이 없다’는 대답이 나왔다.

서울 도화동의 한 부동산 업소 사장은 “전세 계약서를 언제 썼는지 기억이 가물가물하다”고 했다. 그는 “주변에 대단지 아파트가 많은데도 전세 물건이 잘 나오지 않는다”면서 “최근에는 근처 업소 10여 곳이 각각 한 달에 계약서 한 장을 쓸까말까 하는 정도”라고 말했다.

서울 잠실동 H공인중개사 대표는 인근 아파트 단지 5600가구에서 하루 종일 나오는 전세 물량이 평균 5건 정도에 불과하다고 설명했다. 세입자들이 선호하는 20평∼30평형대는 3건이고, 나머지 2건은 40평형대다. 전세 대기 수요는 현재 물건의 3∼4배다.

가뭄에 콩 나듯 나오는 전세 물건은 당일 계약하지 않으면 놓치기 쉽다. 세입자가 예전처럼 집을 고르다 보면 전셋집은 금세 다른 사람에게 넘어간다. 한 공인중개사는 “어렵게 나온 전셋집을 보고 갔다가 며칠 뒤 그 집이 남아있느냐고 전화하는 세입자가 있는데, 그런 식으로는 전세를 구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대기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가도 부동산 업소의 전화를 받지 못해 간발의 차이로 물건을 뺏기는 경우도 있다.

부동산 업소끼리는 물건 공유가 원칙이지만 이를 어기고 몰래 물건을 빼돌리는 경우도 빈번하게 나타난다. 업소 사이에서는 ‘전셋집 하나 뜨면 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진다’는 말이 횡행하고 있다.

전세금도 하루가 다르게 오르고 있다. 서울 도화동의 D부동산은 “계약이 될 때마다 가격이 오른다. 20평형대의 경우 전세금이 매매가의 80%에 육박한다. 나중에 주인이 감당할 수 있을까 걱정이 될 정도”라고 말했다. 서울 잠실동 리센츠아파트의 전용면적 84㎡도 전세금이 매매가의 70%를 넘었다.

근저당이 잡혀있는 경우도 과거와 달리 거래가 잘 이뤄지고 있다. 잠실의 한 부동산 업소는 “예전에는 근저당이 있는 집은 쳐다보려고 하지도 않았지만 요즘은 1억원 미만의 채무는 세입자들이 크게 개의치 않아하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부동산정보업체 부동산써브는 8월 첫 주 기준으로 서울 중소형아파트(전용면적 85㎡ 이하)의 3.3㎡당 전세가가 827만원, 중대형아파트(전용면적 85㎡ 초과)는 915만원으로 나타나 둘 사이의 가격차가 88만원으로 좁혀졌다고 밝혔다. 2006년 조사를 시작한 이후 가장 작은 수치다. 2006년 8월의 경우 둘의 차이가 154만원이었다.

권기석 이경원 기자 key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