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 푸어 양산] 전세가율 80% 육박해도 전셋값 올려주며 대출로 버티기

입력 2013-08-09 05:04


전세자금 대출 급증은 ‘대란(大亂)’으로 비유되는 전세 품귀 현상 때문이다.

서울 지역에서는 전세가율(매매가 대비 전셋값 비율)이 70%를 넘기는 아파트 단지에서도 매매를 찾아보기 힘들다. 전셋값이 매매가의 60∼70% 수준이 되면 전세 수요가 매매 수요로 전환된다는 부동산 업계의 공식은 이미 옛말이 된 것이다.

문제는 매매가가 하락하고 전셋값이 치솟으면서 이른바 ‘깡통전세’ 급증 가능성이 커지고, 이는 서민들의 ‘신용대란’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이다. 전세가율이 치솟아 경매에 넘어갈 경우 세입자가 전세보증금을 떼일 수 있는 집이 늘고 있어서다.

금융감독원 고위 관계자는 8일 “전셋값 폭등은 경락률(감정가 대비 낙찰가율)과 전세가율을 역전시켜 ‘전세푸어’들에게 위협을 줄 수 있다”고 경고했다.

애초 부동산시장에서 전셋값은 매매가의 60∼70%를 임계점으로 형성되고 있었다. 경락률은 78∼80% 수준이었다. 1억원짜리 집의 전셋값은 6000만∼7000만원, 경매 시 낙찰가는 7800만∼8000만원이었다는 의미다.

하지만 최근 들어 전세가율이 80%에 육박하는 등 경락률을 뛰어넘는 상황이 속속 발생하고 있다.

서울부동산정보광장에 따르면 서울 전농동에 있는 초대형 아파트 단지인 전농SK아파트는 지난달 59㎡(전용면적)가 2억6000만원에 거래됐다. 같은 기간 같은 아파트의 전셋값은 2억500만원이었다. 전세가율이 무려 78.8%에 달한 것이다. 전셋값에 5500만원만 보태면 아파트를 보유할 수 있지만 인근 부동산들은 “매매가 극도로 부진했다”고 입을 모았다.

서울 반포동 래미안퍼스티지의 168㎡(전용면적)도 지난달 매매가는 20억2500만원, 전셋값은 15억원으로 전세가율이 74.1%였다.

심지어 전셋값이 매매가를 뛰어넘는 역전현상 사례도 나오고 있다. 광주광역시에 이어 최근에는 수도권인 경기도 수원시 영통동 휴먼시아 9단지 59㎡(전용면적) 아파트가 전셋값 2억원에 거래되면서 매매가인 1억9000만원을 추월했다.

상황이 이러함에도 세입자들은 부동산 시장이 살아날 것을 믿지 못해 전세를 고집하고, 집주인들은 전셋값을 높이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이 때문에 부동산 업계에서는 “정부가 매매 활성화 대책을 마련해 줘야 한다”는 볼멘소리가 매일같이 나온다.

비수기에도 전셋값 상승세가 이어지자 가을 이사철에 수도권발 전세대란 재현 가능성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2년마다 목돈을 준비해야 하는 서민 세입자들의 대출 액수가 급증, 서민 전세 세입자들이 이미 가계부채의 새로운 위험군으로 부상한 상황이다.

금감원에 따르면 국내 은행의 전세자금 대출 잔액은 2011년 말 18조2000억원, 지난해 말 23조4000억원, 지난 6월 말 25조5000억원으로 꾸준히 우상향 중이다. 금감원 관계자는 “금융권이 계속 빚을 권유하는 방식으로 대책을 세우기도 쉽지 않다”고 토로했다.

이경원 기자 neosar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