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에서-이영미] 그들이 사는 세상
입력 2013-08-08 18:07
그곳에서 아이들을 보게 되리라고는 솔직히 기대하지 않았다. 반신반의하며 찾아간 새벽녘 지하철2호선 신림역 인근 패스트푸드점 2층 구석에는 10대 몇 명이 졸고 있었다. 낯선 어른의 접근에 아이들은 졸음으로 꺾이는 목을 간신히 들어올렸다. 새벽까지 거리를 떠돈 피곤과 무료함이 잔뜩 묻은 얼굴이었다.
오늘은 어디서 자니? 어제는 어디서 잤니? 그저께는? 내일은? 아이들을 만날 때마다 묻고 또 물었다. 모두 집을 나왔고, 적어도 당분간은 집에 돌아갈 마음이 없는 애들이었다. 그들이 24시간 커피전문점과 패스트푸드점에서 잠을 잔다고 말했을 때도 속으로는 반신반의했다. 내가 아는 10대는 수학여행지 유스호스텔의 낯선 잠자리조차 힘들어하는, 까다로운 세대였다. 내 아이가 그렇고, 이웃과 친척집 10대가 대부분 그랬다. 막차가 끊긴 하룻밤이라면 모르겠다. 몇 개월을 거리에서 돈도 없이 어디서 자고 무엇을 먹는단 말인가. 아이들이 해주는 이야기들은 머릿속에서 아귀 맞지 않는 문짝처럼 덜컥댔다. 케첩 얼룩으로 지저분한 테이블 위에 얼굴을 묻고 곯아떨어진 눈앞의 아이들을 보기 전까지는 그랬다. 아이들은 정말 거기서 자고 있었다.
“쉼터에 가는 게 어떠니?” 하나마나 한 충고를 건네고 돌아오던 길, 신림역 일대는 낯설어보였다. 불과 2∼3주 전에도 몇 번이나 오간 곳이었다. 그때 거리는 핫팬츠와 스키니진, 킬힐, 쉬폰드레스가 팔랑대고 있었다. 신림은 인근 대학생들과 강남 구로를 오가는 직장인들이 쇼핑몰 두 동을 중심으로 오가는 대형상권이다. 하루 수십만 명이 움직이는 번화가를 분노와 반항, 무기력, 배고픔으로 뒤범벅된 아이들이 몰려다니고 있으리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며칠 동안 가출청소년을 돕는 쉼터 전문가와 함께 아이들이 많이 모이는 대도시 유흥가를 돌았다. 가출청소년들의 메카라는 신림역에서는 4번 출구 패스트푸드점에서 출발해 서울대 방면으로 걷다가 우회전해 뒷골목 순대골목을 훑은 뒤 길을 건너 왼편으로 크게 원을 그리며 도림천변의 유흥가를 돌아봤다. 전문가는 곳곳을 가리키며 설명했다. 여기는 10대들이 눈길을 피해 담배를 피우는 ‘담골(담배골목)’, 저기는 아이들이 모이는 PC방, 잘 곳 없을 때 찾는 햄버거집, 돈 생기면 가는 고시텔….
그제야 아이들이 사는 작은 세계가 보였다. 우리가 밥을 먹고 차를 마시고 쇼핑을 하던 그곳은 아이들이 생존하는 작은 밀림이었다. 밀림의 아이들은 뜻밖의 방식으로 말하고 행동했다. 눈뜨고 잠들고 먹고 씻는 일상의 규율 같은 건 무의미했다. 잠잘 곳이 생기면 잠을 잤고, 눈을 뜨면 일어났다. 돈이 생기면 먹고 없으면 굶었다. 누군가 ‘알바’를 하거나 휴대전화라도 훔쳐 파는 날엔 노래방에 몰려가 노래를 부르고 모텔에서 술을 마셨다. 밥을 사주는 사람은 따라갔다. 도움이 되지 않는 어른은 적대시했다. 무리 속에는 리더격인 ‘형’과 ‘오빠’들이 있었다. 마치 사회로부터 오래 격리된 늑대소년처럼, 그들은 그들만의 규칙을 따라 움직였다.
저기, 저곳에 늘 있었던 아이들을 한 번도 보지 못했던 이유를 생각했다. 그들이 보이지 않았던 건 눈이 나빠서는 아니었을 것이다. 소설가 정유정의 말마따나, 문제는 시력이 아니라 시선일 테니까. 혹은 “한 인간이 속한 세계의 차이” 같은 것이거나(‘28’ 중에서). 이혼율이 치솟고, 깨져버린 가정의 아이들이 집을 탈출할 때 우리는 모른 척했다. 그 책임을 지기에 지금이 너무 늦어버린 건 아니길 바랄 뿐이다.
이영미 정책기획부 차장 ymlee@kmib.co.kr